육아에세이 35
아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요즘엔 다 빨라진걸까.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편지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린이집에 다닐 때 벌써 편지를 써오다니. "엄마아빠가 이써서 행복해요." 편지지에 적힌 이 문장에 마음이 한없이 뭉클해졌다.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어버이날에 담임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글씨를 쓰셨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쓰는 편지였다. 반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베껴썼다. 그대로 따라만 쓴 건데 그걸 본 아빠가 우셨다. 그 기억 때문일까. 편지는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힌 게 아닌가 싶다.
그 편지를 썼던 어린 내 모습과 지금 내 아이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아이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이거 직접 생각해서 쓴거야?" 그렇단다.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똑똑하다. 누가 써준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엄마아빠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말로 다가왔다. 부모의 존재로 아이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건 최고의 찬사였다. 그 순간 아이에게 이런 편지를 오래도록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생일에 작은 선물을 준비할 땐, 꼭 편지를 함께 넣는다. 포스트잇을 마름모 형태로 세워 깨알같이 쓴 작은 편지를 붙일 때도 있고, 하나씩 수집한 엽서 뒷면에 편지를 쓸 때도 있다. 아이에게 받은 편지지처럼 이젠 밑줄이 쳐진 정식 편지지를 사용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누군가에 대해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편지보다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건 없다고 믿으며.
아이에게 이번 편지를 받으며 한번 더 그 사실을 확인했다. 적어도 내가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누군가가 한 자씩 눌러쓴 글씨 안에 담겨 있구나, 하고. 받고픈 방식대로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려고 자주 편지를 적고 있다는 것도. 그 동안 내가 전하고자 노력한 각자 사람들에 대한 인상, 고마움, 위로, 그리움들이 여느 편지들에 고스란히 담겨 간직되기를. 내가 내 아이의 편지를 뭉클한 기분으로 계속 들여다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