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36
져야 이기는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집에선 그런 게임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어디서 착안한 건지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고안해냈다.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자신에게 좋아보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들고 '이거 가질 사람?' 제안을 한다. 그 물건이 갖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야 한다. 손을 든 사람끼리 가위바위보 혹은 하나빼기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진 사람'이 물건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게임이 즐거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위바위보를 진 것도 서러운데 물건을 가지지도 못하는 이중의 서러움이 여기엔 없다. 진다는 사실이 즐거워진다. 이 게임의 최대혜택자는 우리집 가위바위보 최약자인 신랑이다. 왜 맨날 보자기부터 내냐고 장난스러운 핀잔을 줘도 매번 보자기를 내던 사람이 이젠 희희낙낙한다. 환골탈태를 했나 이젠 지고 싶어 머리를 굴리는 내게도 끄떡없다. 전과는 다른 승리율이다. 아무생각 없이 가위바위보를 내도 거의 승리자였던 나의 즐거움은 조금 희석되었지만 흥이 사라지진 않는다. 가위바위보는 이기고, 아이의 선물은 신랑이 챙겨가니 그것도 공평하다 싶어 괜찮은 기분이 유지된다. 아이는 공평한 심판자 노릇을 한다. 아빠에게 자칭 '선물'이 집중되는 것 같으면 은근슬쩍 게임의 룰을 바꾼다. '아냐아냐 이번엔 이기는 사람이 가지는 거야'하면서. 그 모습에 우리 부부는 또 웃음이 난다. 아이의 사회생활인 듯, 사람 사이의 감정조절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도 져야 이기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모든 한 곳에 집중되지 않는 삶. 이게 아니면 안될 것 같다는 강박과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경쟁 아닌 일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는 그런 비참한 생각은 안하는 삶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규칙을 조금씩 바꿔 생각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는 일상을 그린다. 아이가 고안한 게임을 하면서 내가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세상의 일들이 뭐가 있을까 질문해보게 됐다. 세상이 은근히 강요하고 압박하는 암묵적인 규칙과 생각들을 찬찬히 되짚어보고,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선과 내가 꼭 지키고 싶은 것들을 평소에 지속적으로 되새김질 하는 시간을 가지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