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56
첫 러닝을 했다. 그것도 바다를 보며. 첫 러닝장소로는 황홀할 만큼 좋은 장소였다. 전부터 러닝을 해온 직장동료가 부산 출장 때 러닝할 준비를 해온다는 말에 나도 해보고 싶다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올해 러닝에 도전해볼까 생각만 하던 차였는데 러닝메이트가 있으면 보다 수월하게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출장 전날 성실하게 전송해준 러닝코스를 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물론 반신반의했다. 보내준 코스를 보니 2.5km 37분거리로 왕복 한 시간이어서 '이거 첫 러닝코스로 뛸 수 있는거야?' 물으니 그건 걷는 도보시간 측정이라 30분까진 안 걸린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어련히 잘 짰으련만 첫 러닝에 도전하는 초보자는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이렇게 읊조렸다. '일단 편도로 가는 것까지 해보다 안되면 중간에 딴 길로 빠지지 뭐.'하고. 내 컨디션, 내 체력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며 살고 있는 나이니까.
출장을 함께 간 사람들 중 러닝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동료들이 너댓명이 있었는데, 부산 광안리 해변가 앞 호텔 로비에서 만난 사람은 러닝을 처음 추진한 동료 한 명과 나 단둘이었다. 고요한 새벽, 아무도 지나 다니지 않는 호텔 로비에서 차분히 준비운동을 하는 시간이 설레기 그지없었다. 호텔방을 나설 때만 해도 어둑어둑했는데 준비운동을 하는 사이, 어스름한 빛이 조금 더 밝아져 있었다. 고맙게도 어떻게 준비운동을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시범동작을 따라해가며 몸의 준비도,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었다. 진짜 해보는구나, 하는 벅찬 마음과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에 입술이 달싹거렸던 것도 같다.
생각보다 하나도 안 추운 새벽 여섯시의 공기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고마워, 공기야. 첫 러닝에 너무 매서운 바람 앞에 서지 않게 해줘서.' 감싸안아주는 듯한 공기에 감사를 전하며 뛰기 시작했다. 직장동료의 존재가 참 든든했다. 제대로 뛰면 말도 못 건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러닝을 이어갔다. 대화의 연속이 러닝의 연속과 맞물린다는 의미인 것처럼. 대화와 러닝이 즐거운 동일성으로 묶이는 느낌이었다.
내 왼쪽 옆으로 바다가 눈에 들이차고, 우뚝 서있는 광안대교 위 차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달리고 있었다. 물론 달리는 속도가 빠른 걸음 정도였지만 두둥실 떠가는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다 위에 떠있는 배 같다고, 내 팔다리가 내 심장을 들고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찼고, 가쁜 숨을 고르면서도 다리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전진만이 내게 남아있는 길이라는 단순함이 행복했다. 앞으로 그저 다리와 팔을 움직여 나아가면 된다는 사실이 편안했다.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바깥의 공기, 자연에 머무르는 시선이 함께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너무나 평온했다. 달리는 시간에 평온이 깃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했다.
2km를 채우고 잠시 멈춰서서 뜨는 붉은 해를 바라봤고, 인근 아파트 앞에 핀 동백꽃의 선명한 빛도 마주쳤다. 데크에 서서 잔잔한 바다를 고요히 응시하면서 신혼여행 때 갔던 마드리드 해변가도 떠올렸다. '다시 뛸까?' 러닝메이트의 소리에 힘들다는 생각보단 반갑다는 생각이 앞섰다. 왕복 4km를 채우면서 스스로 감탄했다. 나 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그리고 아주 천천히여도 포기하지 않고 내 몸에서 속도를 내어 앞으로 전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쁘고 또 기뻤다.
다시 언제 두번째 러닝을 시작할지 아직 모른다. 그치만 내 체력과 상황에 맞는 러닝시간대와 주기를 찾아보려 한다. 주말 아이와 같이 내려가서 마주한 하천변 러너들을 보면서 전과는 다른 기분이 든다. 나와 무관한 사람과 모습으로 지나치는 게 아니라, 내가 첫 러닝을 하며 내 다리의 각도를 느꼈으니 다른 러너들의 모습을 스캔하며 살피고 있었다. 저 러너는 얼마나 오래 러닝을 꾸준히 해왔을까 하고 경외감을 남몰래 보낸다. 다시 뛰고 싶다. 달리는 순간의 평온함 속에 다시 빨려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