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38
요즘 자주 생각하는 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아이가 어릴 때 한창 주말마다 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하루종일 아이와 부대끼는 것보다 바깥에서 아이를 챙기는 게 덜 힘들었다. 바깥세상 풍경에 아이 시선이 향하고, 우리도 한숨 돌리며 여유가 생기는 패턴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유명한 소아과 선생님 영상에서 이런 말을 접한 기억이 난다. 맨날 비싼 돈 들여서 멀리 여행 가지 말고 집앞 놀이터, 공원 등에서 아이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라고. 멀리 떠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아이가 커서 편안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 영상을 접했던 땐 한두시간 차를 타고 근교 당일치기 주말여행을 자주 다닐 때여서 그랬는지, 그 말이 기억에 계속 남아 있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과 내모습을 반추하며 찔리는 기분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이제는 아이가 일곱살이 되어 꼭 붙어있지 않아도 혼자 여러가지를 스스로 하는 습관이 생겼고, 혼자 사부작거리며 노는 시간도 길어졌다. 꼭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아이가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 활동을 하며 집중한다. 아이의 시선이 스스로의 활동에 몰입하며 안으로 향하게 된 느낌이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전과는 다르게 특별한 경험을 위해 차타고 멀리 여행을 주말마다 감행하지 않게 되었다. '어디로 차타고 떠나지?' 하며 코스를 짜던 시간들이 어느새 흘러갔고. 이젠 '집 근처에서 어디 맛있는 곳에서 주말 점심을 먹을까?'와 '점심 먹고 가까운 곳 어디를 들렀다 집에 갈까?', 이 두가지 질문을 엮는다.
아이 미술학원이 끝나는 토요일 정오 전 우리 부부는 나란히 걸어서 아이를 데리러 간다. 저저번주는 숯불고기, 저번주는 찜닭, 이번주는 보쌈이 점심메뉴로 간택되었다. 아이도 이젠 미술학원 마치고선 우리 손을 나란히 잡고 걸으며 말한다. '이쪽은 집가는 길이 아닌데. 우리 오늘은 어디 먹으러 가?' 그리고선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천변을 내려다보며 아이가 코스 하나를 짠다. '점심 먹고나서 여기 내려가보자. 그리고나서 운동장 가자'하고. '그래 좋아. 천변 내려가보고 싶어? 그럼 점심 먹고 천변 내려갔다가 엄마 안경점 들렀다 운동장 가자. 안경점 잠깐 가야해.' 이런 식으로 주말의 집근처 코스가 추가된다.
그저 다리로 지나칠 땐 몰랐는데 천변에 내려가 벤치에 앉아보니 따스한 햇살도 불어오는 바람도 참 선선하니 좋고. 무엇보다 아이가 천변에 놓인 운동기구들을 처음 만지는 장난감처럼 너무 재미지게 가지고 논다. 어깨운동하는 바퀴모양휠을 돌리며 힘자랑을 하지 않나, 바닥에 진 바퀴모양휠 그림자를 땅따먹기 놀이하듯 외발로 지나치며 뜀뛰기를 하지 않나, 다리운동하는 운동기구가 자신의 키보다 높아서인지 무슨 자전거타듯 몸을 숙이고 속도 자랑을 하지 않나. 그 모습이 너무 코미디 같이 웃겨서 웃기 바빴다. 아이가 엄마아빠도 해보라고 해서 간만에 운동기구도 타봤다. 아이가 '다 놀았어. 이제 운동장 가자' 하는데, '다 놀았어'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며 앉아있었던 때가 있었나 돌아보게 되기도 했고.
운동장 가기 전 들른 안경점에서 발견한 '박하사탕'을 맛있게 먹으며 내일 먹을 박하사탕까지 야무지게 주머니에 챙기면서 안경점 사장님에게 '저 이거 먹어도 돼요?'하고 정직하게 되묻기까지 한 모습이 생각지도 못한, 내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나가다 본 과일가게에 계획없이 들려서 똑 떨어진 딸기 두팩을 사서 집에 둔 뒤, 다시 운동장으로 나가서 농구를 했는데. 엄마아빠가 둘이 대화하고 자신의 놀이에 함께하지 않자 뿔이 나서 내게 탱탱볼을 던지고 혼나자 섭섭한 마음에 눈물이 터진 일도.
이 모든 주말의 일들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인데도 이젠 이 안에 특별한 편안이 있다고 느낀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집근처 식당에서 먹는 맛있는 외식 한끼, 가까운 하천변 산책, 선글라스를 맞추려 들른 안경점에서 우연히 맛보고 아이가 좋아했던 박하사탕, 아이가 직접 고른 딸기, 뿔이 났지만 또 눈물을 닦고 만든 모래성까지. 아이가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엮인 이야기들에서 기쁨, 슬픔, 즐거움, 감사, 행복을 느끼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