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7편
일년 반만에 할머니를 뵈러 간다, 요양원에. 하루하루는 참 긴데, 전체 시간은 빨리도 간다. 작년 1월인가 설쯤 겨울에 신랑, 아이와 다같이 할머니를 뵈러 갔었는데. 처음 할머니에게 증손자를 보여드렸고, 그땐 훨체어에 앉아 계셨는데. 일년 반만에 뵈러가니 계신 곳까지 올라가서 뵈어야 한다.
돌이켜보니 할머니에게 가는길은 늘 그랬다. 취업공부를 오래할 때, 쉬었다 가고 싶을때 할머니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왔었던 기억이 났다. 할머니집에서 누구 눈치도 볼일 없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집앞에 나가서 할머니랑 산책도 하고 할머니가 구워주는 목살도 먹으며 쉬고왔던 기억:)
할머니가 치매판정을 받고 상주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도 집에 있는게 어렵다는 판단으로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면서 할머니집=쉬는 곳은 사라졌지만 내게 그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맞벌이였던 부모 아래서 나와 동생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가는 길은 내가 어떤 전환기에 있을때, 전환기 돌입 전 잠깐의 쉼 자체였다.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까지는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다. 그래도 일년반 전보다 교통편이 좋아져서 아침11시 면회시간에 맞춰 갈 수 있게 된게 행운이다:) 할머니를 이번에 뵈면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공간에 처음 가보는 거니까 준비했다, 노란 수선화가 핀 사진엽서와 아이 돌때 찍은 세 가족사진을. 그리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연 빵집을 물색했다. 할머니를 보살펴주시는 요양보호사, 간호사 분들께 약소한 간식 빵도 기분좋게 살 수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를 몇가지 생각해두었다.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건 그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인 듯하다. 할머니와 고등학교 때까지 같이 살면서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몇가지 유독 기억난다. 소뼈를 며칠 고아서 만들어주신 뽀얀 사골곰탕, 깻잎에 부침가루반죽 묻혀서 만들어주신 깻잎튀김, 수육 삶는 날이었던 김장날 담근 포기배추김치, 직접 끓여서 베란다에서 굳힌 호박엿까지. 그것들이 다 기억난다고. 사골곰탕은 진짜 할머니가 만들어준 거 먹고 싶다고. 내 아이에겐 정작 난 해준 적이 없는데 할머니는 내게 그걸 해주셨다고. 할머니가 키워준 나나 동생이나 너무 잘 살고 있다고. 할머니가 잘 키워줘서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많이많이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것도, 입으로 먹는 것도 잊어버리신 할머니께 주저리 그런 말들을 늘어 놓았다. 할머니가 자신의 존재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걸 지금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누워계신 곳에서 할머니 얼굴을 살짝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할머니를 전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 할머니 얼굴을 이렇게 오래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게. 전에 훨체어에 타 계실 땐 자꾸 몸이 앞으로 쏠리셔서 그걸 지지해드리느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긴 어려웠는데, 역설적이게도 누워만 계실 수 있는 사실이 갓난 아기 바라보듯 바라볼 수 있는 편안함을 내게 주었다. 치매 전엔 얼마나 밖으로 돌아다니셨는지 그 생각을 하면 지금 얼마나 갑갑하실까 생각하면서도...
할머니가 계속 누워서 바라보는 흰 벽면에 붙여드린 노란 수선화 사진과 우리 세가족의 사진이 할머니의 외로운 시간들을 채색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교통편이 훨씬 수월해졌으니 약속한대로 추워지기 전에 또 만나러 가겠다고 스스로에게 되짚어준다 .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할머니 나 왔어요~하는 소리에 오랜만에 온 손녀를 반가워하던 할머니 표정을 잊지 않도록.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눈을 깜박이고 오랜만에 온 손녀를 눈에 가득 담으려던 할머니 눈빛이 빛바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