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25편
국어시간에 배운 깃발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유치환의 시였는데, 깃발이 깃대에 매달려 있어 바람에 펄럭이며 어딘가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마음을 빗댄 시로 기억한다. 그땐 그리 길지 않았던, 짤막한 그 시를 스쳐 지나갔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리 절묘할 수가 없다. 뭔가에 매여있는 삶. 매여서도 깃대 밖을 바라보는 욕망. 그 모습이 내가 실행하는 루틴과 일탈의 반복과 너무도 맞닿아 있다.
내가 그린 가족 안에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고 평온하다. 신랑과 아이로 함께 묶이지 않았다면 난 이렇게 편안한 일상을 보내진 못했을 것이다. 평생 내사람으로 정한 한사람의 동반자,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한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게 참 만족스럽다. 일상 충족감의 단단한 중심점이다.
그런 자기만족감의 토대를 지녔으면서도 스멀스멀 일탈을 욕망한다.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자주 그려본다. 특히 즉흥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적막 속에 고요히 자신을 놓아주고 싶을 때.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란 노래가사를 참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안정감을 주는 일상의 루틴이 고마우면서도 그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들이 가끔은 고단하게 느껴질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이 기쁘고 단단해서 감사하면서도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들이는 수고나 헌신이 무겨워 눕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이젠 안다.
가끔의 일탈은 괜찮지 않을까. 조용한 음악 속에 무거운 마음 둥둥 떠다니게 해두고, 혼자 카페에 앉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들은. 하루 연가를 내고 가보고 싶었던 도서관에 가서 책에 파묻혀 있다가 맛있는 소금빵을 맛보는 계획을 세우는 작은 일탈들은. 혼자 있을 땐 그게 루틴이었는데 이젠 그게 일탈이 되어버린 변화가 가끔은 쓰라린 마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무엇이 일상이고 무엇이 일탈이고 싶은지 스스로 정했다는 사실과 그걸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지. 흔들리는 마음 자체를 너무 자기검열하진 않았으면. 신경림의 갈대라는 시에도 나오지 않나. 산다는 건 흔들리는 것이고,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여전히 매일 흔들리며 루틴과 일탈의 균형추를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