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25편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 나온 서울대공원과 현대미술관은 추억의 장소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소풍을 간다하면 서울대공원 옆 서울랜드가 단골장소였다. 초등학교 때쯤 엄마가 동생과 날 데리고 서울대공원 옆 현대미술관에 간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미술관에 전시된 조형물인 거울에 내모습이 비춰지는 게 신기했고, 야외 조형물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즐거웠던 기억들. 그래서일까 음악 감상은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미술관 관람은 함께 해도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걸어다니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같이 미술관을 다녀보고 싶었다. 같이 천천히 미술관 그림 사이사이를 걸어다니며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상상했다. 내 기대과 달리 아이는 꽤 오랫동안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없었고, 미술관은 더더욱 흥미가 없었다. 야외 잔디밭 뛰어놀기, 미술관보다는 박물관을 선호하는 아이였다. 어쩔 수 없지 하고 내려놓는 마음으로 지내다가도 한번씩 고요히 그림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이에게 묻곤 했다. "엄마아빠랑 미술관 갈래?"
아이의 대답은 꽤나 확고했다. 아니 혹은 잠깐만 볼래. 박물관 갈래. 미술학원처럼 그리러 가는 거야? 이런식으로 그림 감상에 호응하기보다 갸우뚱하는 반응들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가 좋아하는 오레오쉐이크를 먹고선 기분이 좋은 사이, 내가 아이에게 말을 꺼낸 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엄마가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했잖아. 엄마 그림 너무 보러 가고픈데 같이 가줄 수 있어?" 이렇게 기분좋은 틈을 타 아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카드를 내밀었다. 그랬더니 흔쾌히 "보러 가자. 보러 같이 가줄게."란 대답을 들었다.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당 떨어져서 마음 바뀌기 전에 바로 가자!
바로 그 자리에서 전시티켓을 예매해서 10분을 걸어 소규모 그림전시공간으로 향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이가 흔쾌히 그림을 보러가자는 말을 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던 것 같다. 생각보다 그동안 거절을 많이 당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꽤나 많이 상심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아이와 그림보기가 내겐 즐겁게 하고픈 상상 속 일이었구나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런 들뜬 마음이어서 그랬는지 아이와 소규모 그림전시공간에 들어서서부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그림보는 걸 같이 즐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관람권에 그림엽서와 굿즈를 선물로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떤 그림엽서를 선택할지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자발적으로 고심하는 행위 자체도 아이의 흥미를 끈 것 같다. 엄마의 취향과 아이 자신의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의 취향대로 자신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그림엽서를 고를 권리가 있다는 걸 존중해주는 마음도 아이가 자연스레 인정하는 기회가 된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소규모 공간이라 아이와 같이 그림을 관람하기엔 최적이었다. 오랜시간 그림을 본다기보다 한 열점 정도의 그림을 집중해서 여러번 보는 느낌으로. 어떤 그림이 더 좋은지 서로의 취향을 나누고, 왜 그 그림이 좋은지 각자 생각해보고 얘기해주고, 어떤 그림은 왜 취향이 아닌지 허심탄회하게 얘기도 해보고. 그런 생각나누기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이제와 회상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시기에야 아이와 이런 대화의 시간이 가능해진 거라고. 아마 아이도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미술관에 가서 이렇게 자신의 느낌,생각을 전할 수 있지 않았기에 흥미를 더는 느끼지 못했다고.
아이와 미술관에 가보기. 저와 같이 이런 기대가 있는 분이라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이는 좀더 커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그림을 보면서도 얘기할 수 있을 때, 그림과 즐거운 대화를 할 때가 올 거라고. 아이와 그림과 그리고 내가 함께 손잡고 노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한동안 간직하고 싶다. 아이야, 또 엄마아빠와 미술관 가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