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Mar 16. 2020

밴쿠버 여름

Keep exploring, Canada

(데이터 주의)

 출국하기 전 한국에서의 여름은 매년 그렇듯 기록적인 폭염으로 불쾌지수가 치솟았다. 아시아 여행만 다녀본 나에게 여름이란 그저 습하고 땀나는 최악의 계절일 뿐이었다. 하지만 밴쿠버의 여름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레인 쿠버라는 별명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비를 만나기 힘들었고 항상 자리를 지켜주는 햇빛 덕분에 어둠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찾아왔다. 건조한 날씨 덕에 챙겨갔던 땀순이의 분신 드리클로는 여름 내 서랍에 처박혀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Deer lake park

 퇴근 후 여전히 밝은 하늘을 보며 집에 가서 밥 먹고 헬스장을 가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운동이 끝나고 저녁 9시 30분쯤 집에 가는 길에서야 저녁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냥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데이오프땐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공원이나 바다를 보러 갔다. 서울에 살았던 터라 바다를 이렇게 자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돗자리 하나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참 팔자 좋다 생각하면서도 한강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 캔 하던 추억에 잠기곤 했다. 캐나다는 지정된 장소 이외에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불법이라 그랬던 것 같다.

Coopers park
Olympic village
Stanley park
English bay

  우연한 기회로 친구와 함께 조프리 레이크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밴쿠버에서도 차로 두 시간 반 정도 달려야 할 정도로 꽤 거리가 있는 곳인데, 3가지 에메랄드 빛 호수를 볼 수 있는 유명한 관광 장소중 하나이다. 처음엔 평지인 줄 알았지만 왕복 세 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행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집 뒤에 아차산을 두고도 한번 안 가던 사람이지만 오직 여름에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 등산로처럼 길이 잘 포장되어있지 않고 자연의 것 그대로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높은 경사와 울퉁불퉁한 바닥에 땀이 줄줄 흘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마주한 호수는 정말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호수를 보자마자 그 모든 힘듦이 다 잊혀 버렸다. 고진감래라더니 달콤함의 수준을 넘어섰다.

 조프리 레이크는 호수가 총 세 개 있는데 그중 가운데 위치한 호수가 가장 아름답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까지 오르려면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산 길에 이 호수까지 못 올라가겠다며 대체 얼마나 더 걸리냐고 묻는 한국인 분들이 꽤 있었는데, 저도 진짜 죽을 뻔했지만 너무 아름다웠어요. 조금만 더 참고 가시면 돼요!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해줬다. 왜냐면 나도 포기하고 싶었고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호수 한가운데 있는 통나무에 올라가 각자 자세를 취하는데 긴 줄을 보고 포기하려다가 괜히 오기가 생겨 나도 도전해 보았다. 발이 빠질까 봐 무서웠지만 짜릿했다.

제1 호수는 초록색에 가까운 호수였고 뒤의 두 호수보다 큰 감동은 없었지만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기 전 정복 욕구를 북돋아 주는 애피타이저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제3 호수에 올라가니 하늘이 갑자기 흐려져 호수가 어두워졌다. 하지만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법.  

제 1호수


 여름에도 여전히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있었고 매장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생각보다 많은 곳에 다니진 못했다. 한정된 시간으로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레인 쿠버 시작과 함께 사무쳤다. 비록 밴쿠버가 타 도시에 비해 관광지로서 덜 매력적일지라도 나에겐 특별함을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2n년 인생의 여름 중 가장 행복했던 여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vs 캐나다 스타벅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