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의자 Jun 24. 2020

예루살렘 전기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오래전에 건설된 도시라고 모두가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건물과 골목에 남아 있는 그런 도시들에 우리는 감히 전통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지우고 현재의 욕망만을 키워내는 도시에 나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과거 이야기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행복보다 불행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것이 인류가 살아온 흔적이라면 쉽게 지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몽티피오리의 책 <예루살렘 전기>는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잘 알려진 대로 예루살렘은 유일신을 섬기는 세 종교가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땅이다. 유대교에서 이 땅은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성서에 따르면 다윗이 도읍을 정하고 솔로몬이 최초의 성전을 지은 곳이 이곳이다. 무너진 성전은 헤롯왕 등에 의해 여러 차례 복원되었지만, 현재는 통곡의 벽만이 남아 수많은 유대인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성전산이라고 부르는 곳 주변은 지금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아브라함이 야훼의 목소리를 따라 이삭을 바치려 한 곳도 이 도시에 있다.      


기독교에서 예루살렘은 예수가 고난을 받은 곳이다. 복음서에는 십자가형이 치러진 골고다 언덕 근처에 예수가 묻혔고 이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곳에 선 성묘교회는 이 종교에게 당연히 신성한 곳이다. 예수와 관련된 수많은 ‘성’전설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천년 이상 도시를 지배한 무슬림에게도 이곳은 신성시된다. 수학적·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룬 건축물로 평가되는 바위돔은 인간의 감정을 불어넣은 예루살렘 최고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의 악사 사원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유명한 ‘밤의 여행’과 관계된 곳이다.      


<예루살렘 전기>는 이런 종교적·신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예루살렘의 이천년을 ‘역사’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는 시점에서 출발하여 그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오래된 도시를 다룬 여러 문헌의 기록을 종합하여 하나의 전기로 꾸민 필자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연대기 형식이 갖는 지루함이 없지 않지만, 십자군이 세운 도시와 살라딘의 통치,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건국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두 담고 있다. 단, 중동 전쟁 이후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책을 읽고 이 도시의 역사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혼종’이었다. 다윗 시대는 역사로 확인하기 어렵다 해도, 예수가 살았던 시대부터 예루살렘은 주변의 다양한 종교와 인종의 집합소였다. 20세기 중반까지 지중해 서쪽의 그리스·로마인,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인, 요르단강 동쪽의 아랍인, 유대인, 중앙아시아의 아르메니아인이 언제나 적잖은 비율로 이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도 이 도시의 인종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근대에 생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이 도시를 통제하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시대에 이 책은 예루살렘과 레반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작가의 이전글 입 속의 검은 잎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