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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몇 달 시달리던 일을 마무리하고 마침 며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는 일과 상관없는 그냥 재미있는 책을 찾게 된다. 추리소설은 흔히 연애소설, 역사소설과 함께 대중 소서로 분리된다. 연애소설은 간지럽고 역사소설은 뻔한 스토리인 경우가 많다. 거기다 난데없는 계몽이나 애국심이 끼어들면 소설 읽는 재미가 반감되곤 한다. 최소한 추리 소설에는 그런 낯부끄러운 장면은 적다. 가끔 서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작가가 만났을 때 화가 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추종하는 독자로서 스페인의 에코라는 광고에 일단 끌려 책을 손에 들었다. 이 소설은 500년 전 플랑드르의 화가 반 호이스의 명화 <체스 게임>에 담긴 사연과 그 그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중심 이야기로 한다. 중세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방식이나 추리 소설의 서사를 따른 점이 에코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세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 속 이야기가 주는 흥미는 만점이다. 그림 속 영주와 기사가 두고 있는 체스 게임을 현재의 체스마스터와 살인자가 이어서 둔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체스는 행마정도만 알고 있지만 소설을 읽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에코 소설과 비교해 본다면 구성의 단순함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미의 이름>이나 <프라하의 묘지>에 비해 이 소설의 서사는 단순한 편이다. 등장인물의 숫자도 적고 그들의 성격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야기도 단선적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그래서 빨리, 쉽게 읽힌다. 반면에 머리를 긁적이며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에코의 소설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놓아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데 비해, 이 소설의 중세 역사는 단순한 소재 차원에 그친다는 느낌을 준다. 에코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고, 에코를 모른다면 편견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난 한줄 감상은 엉뚱하게도 “아! 플랑드르에 가보고 싶다.”였다. 소설로 여행하는 일도 즐겁지만 실제 그곳에 가보는 즐거움만 하겠는가. 빨리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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