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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키나 몸무게를 측정하듯이 사람들의 위트 지수를 측정하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재치로 번역되기도 하는 위트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에서 비롯된다. 특히 풍자를 통해 어긋난 현실을 웃음으로 공격하는 데서 위트는 큰 빛을 발한다. 이런 점에서 위트는 천박한 저질 농담들과 구분된다. 위트, 풍자, 패러독스는 아마 사촌 쯤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저명한 기호학자에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지만 그 못지않게 위트 있는 산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호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전공하였고 유럽 언어 대부분을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이다. 정치현실에서 일상에 이르는 자기 주변을 언제나 날카롭지만 독특한 시선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지식인이다. 이런 에코의 면모를 한두 권의 책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그의 사상에 접근하기에 가장 편안한 책이다.      


이 책은 서너 쪽에서 열 쪽 정도에 이르는 짧은 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문 칼럼에 일상에서 느낀 생각들을 적은 글들이라 순서 없이 가볍게 읽어도 좋은 책이다. 독자는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따라가며 웃으며 감탄하고 통쾌해하면 된다. 글들의 제목을 무작위로 뽑으면 “세관을 통과하는 방법”,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쓰러지게 하는 방법”, “종교를 알아보는 방법”, “반박을 반박하는 방법”, “서부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 “과부를 경계하는 방법”, “지적인 휴가를 보내는 방법”, “속편을 쓰는 방법” 등이다.      


“기내식을 먹는 방법”이라는 글을 잠시 보자. 좁은 의자에서 기내식을 먹는 일은 정말 어렵다. 어느 날 기내식으로 소스를 흥건하게 뿌린 고기, 채 썰어 포도주에 절인 채소, 토마토소스를 친 쌀밥, 삶은 완두콩, 빵이 나온 모양이다. 에코는 난기류에 흔들리는 기내에서 포크로 완두콩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왜 기내식 빵은 그리 잘 부서지는지 등을 적는다. 기내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비교적 자리가 넒은 일등석 기내식이 더 간편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에코는 아마 영화 속 거물들이 포도 알을 입에 물고 ‘저자를 사살해’라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이 글은 말하자면 기내식 메뉴를 준비한 ‘바보’들에 대한 야유이다.      


세상에 대해 쉽게 분노하고, 신념과 이념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원하는 만큼 빨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데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웃음으로 어리석은 세상을 내려다볼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바보들에게는 화를 내야 한다. 에코의 말을 인용하면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웃으면서 화를 내고 살자.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노인네라는 소리 듣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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