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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히로히토 평전-근대 일본의 형성

허버트 빅스

히로히토(裕仁, 1901-1989)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는 1926년부터 집권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항복 선언을 한 인물이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방송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전범 국가의 수장이었으면서도 종전 후 히로히토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상징적 지위에 머물면서 심지어 평화를 설파하곤 했다. <히로히토 평전>은 20세기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간 그의 생애를 다양한 자료와 증언을 통해 복원해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메이지 천황의 아들 요시히토는 천황에게 주어진 사상 초유의 막강한 권력과 권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세우지 못했다. 그의 시대에는 의회정치 실현을 추구하는 정치가, 언론인, 지식인 들이 등장했고, 미국 문화와 개인주의가 부상했다. 이 시기가 일본이나 우리 문화사에 자주 등장하는 대정데모크라시 시대이다. 십여 년에 불과했지만 약한 천황 아래 사상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장되고 다채로운 문화가 꽃 피었던 것이다.      


요시히토의 아들이자 메이지의 손자인 히로히토는 강한 천황의 부활이라는 일본 우익의 기대를 만족시켜준 인물이었다. 그는 천황으로 태어나 천황으로 길러졌으며, 자기 자신을 전제군주이자 신격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며 성장했다. 또, 그는 필요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쓸 줄도 알았다. 부왕이 살아 있을 때부터 섭정의 자리에 올랐고, 왕위에 오르자 곳 만주사변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16년 전쟁을 이끌었다. 그는 천황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행해지는 시대에 하나의 꼭짓점으로 존재했다. 만세일계의 절정이자 국민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종전 후 일본 우익과 미국은 암묵적 공조 속에 히로히토에게 유약하고 유명무실한 천황이라는 가면을 씌워 태평양전쟁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려 했다. 그리고 이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이 책의 저자 허버트 빅스는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뒤엎으려 한다. 그는 일왕 히로히토가 태평양전쟁에서도 누구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따라서 전쟁 책임 문제에서 결코 면죄부를 받을 입장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심정적으로 그러리라 추정했던 바를 구체적 자료를 통해 밝히려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히로히토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것을 재는 일은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국주의 일본의 모든 권력이 그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권력을 위탁받았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고 권력이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을 용인한다는 명분이야말로 현실적인 권력이 된다. 따라서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진 권력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현실에서는 신과 거의 대등한 권력을 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현실의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최고 권력자는 자신의 권위를 빌어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을 관리할 수 없다면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성의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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