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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1899-1986)라는 이름에 붙은 명성은 실로 대단하다.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경이롭고 충격적인 미학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평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수식어는 차고 넘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자 한림원 심사위원 한 명이 사퇴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아홉 살 때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소년, 도서관장을 지내며 머릿속에 백과사전을 넣고 살았던 기억력의 천재, 눈이 먼 노년에도 구술로 글을 완성한 작가였다. 보르헤스는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장님 수도사 호르헤의 모델이기도 하다.       


1944년 출간된 <픽션들>은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준 소설집이다. 처음 그의 소설을 접했을 때 느낀 당혹스러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열 페이지가 못 되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읽기가 매우 어려웠다. 짧은 이야기 속에 너무 많은 지식, 너무 낯선 경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과 허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있고 죽음이나 영원, 시간 등의 관념이 바로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실존 인물의 이력을 왜곡하고 가짜 참고문헌과 각주를 다는 기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작가의 백과사전적 지식이 곳곳에 드러나서 글 읽는 속도는 한 없이 늘어졌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보르헤스 소설만큼 흥미로운 읽을거리도 많지 않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발하고 경이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은 읽기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는 주제와 형식 양 쪽에 걸쳐 있는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추리 소설이지만 미래의 하이퍼텍스트를 예고한다.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역사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준다.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의 삐에르 메나르는 프랑스의 작가로 세르반테스의 소설의 1부 몇 장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 써서 돈키호테 못지않게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 여기서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고 삐에르 메나르는 허구적 인물이다. 이 소설은 20세기 후반 이후 유행하는 혼성 모방을 암시하고 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특별한 기억력을 가진 푸네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번 본 사물은 그의 기억 속에서 독특한 기호가 되어 사진처럼 남는다. 그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의 개와 측면에서 보았을 때의 개를 다른 기호로 기억한다. 세상을 이런 식으로 기억하지만 그는 오두막과 헛간 그리고 저택이 ‘집’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묶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는 그들을 묶는 공통의 기호가 필요하다. 이 소설은 미래의 디지털 시대를 예견하는 것 같다.      


대중적 성공과 상관없이 세계 문학사 안에서 보르헤스의 문학이 갖는 위치는 이미 확고하다. 역사와 현실,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문학은 평가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보르헤스는 나에게 모든 개념은 실제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이는 문학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 상투적인 사고를 깨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새롭다고 꼭 두려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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