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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Sep 02. 2017

나는 왜 떠나기로 하였는가


늦은밤, 토마토 소스에게 위로 받는다. 

“나 파스타 잘 만들어. 그건 되게 쉬운 요리거든.”

“그래? 그게 쉽다고?”

“응, 그건 일단 토마토만 있으면 돼. 토마토랑 캔 토마토가 필요해. 토마토퓌레를 말하는 게 아니야, 캔에 든 토마토가 있어.”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간다.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서 준비해 놔.

그다음에 팬에 버터를 두르고 마늘을 슬라이스 해서 구운 다음에 껍질 벗긴 토마토를 팬에 넣고 잘 저어줘. 캔 토마토를 넣고 먹다 남은 와인을 조금 넣어주면서 맛을 보면 돼. 바질이 있으면 더 좋고.”


 2008년 겨울밤, 평소와 다르게 밤에 전화를 건 그가 나에게 난데없이 파스타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내가 그 레시피 실행해 본 것은 아마도 2009년이었다. 내 인생을 걸어 가장 사랑한 사람에게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받고,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밤마다 벽에 머리를 박으며 지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파스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은근하게 저어주는 파스타 소스는 당시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잠이 안 오는 시간, 당장 달려가 그놈의 뺨을 때리고 싶은 아침, 그놈 의회사를 찾아가 박살을 내고 싶은 점심시간에 나는 멍하니 토마토소스를 저었다. 파스타가 주는 포만감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잘 익은 토마토는 뜨거운 웍 안에서 고만고만 저어졌고, 잘 익는 파스타 면은 만족감을 주었고, 뿌려지는 치즈는 행복감을 주었다. 여기에 와인까지 더하는 날은 벽에 머리를 박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수많은 베이킹 반죽들, 심지어 팬케익 조차 나를 배신하고 타버리거나, 말도 안 되게 부풀어 올라버렸지만, 토마토소스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틈을 항상 주었다. 


그렇게 나는 힘든 시간을 넘겼다.


 직장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또박또박 살아왔듯, 그렇게만 하면 결국 내가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패션 MD 로서 내 아이템에 책임지고, 매출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겉보기에 화려하고 그럴 듯 해 보이는 직업이다. 시즌마다 업데이트되는 트렌드를 먼저 보고 '컬렉션'이라는 잔치를 먼저 보고 1년을 앞서간다.  하지만 변명을 위한 변명, 핑계를 위한 자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회의들에 지쳐갔고, 나는 그저 산업화 시대의 '엑셀 순이’가 되어 있었다. 똑똑하다고 믿었던 나 역시도 시간의 노예가 되어 그 자리에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나의 과거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옆방에 있는 사업부장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일을 일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내 마음대로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텅 비었고, 외로웠다. 외로웠고, 텅 비었다. 아무런 열정도 목적의식도 남아 있지 않은 시간들은 길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또박또박 살아왔는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하면서 하라는 대로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책상 서랍에 흩어져 있는 내 이름이 써진 명함뿐이었다. 

발버둥치는 사무실 책상

 

 사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이 무료함을 견딜 수 없었다. 

 이 좌절감과 인생에 대한 배신감을 극복할 수 없었다.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삶, 그것은 결국 가장 나다운 삶이다. 이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써 의존재의 의미를 정의하고 그것을 증명해 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것에 반응하는 나를 보면서 나를 정의하고 증명할 수 있다. 증명한다는 것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실이 아닌지를 세상에 증거를 들어서 밝히는 것, 그것이나의 존재를 증명해가는 삶인 것이다. 


 수학 시간에 증명 문제를 풀어 볼 때는 생각해 보자. 내가 세운 가정에 의해서 맞는 답을 증명해 내는 것은 사실 “결과” 자체보다는 풀어내는 “과정”의 아름다움이 있다. 과정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의 과정들을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시도하고, 틀리고, 맞으면서 나의 생각을 연결해 간다.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결과도 잘못될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올바르고 논리적이라면, 결과는 참이다. 


 내가 나 스스로 가정을 세우고, 스스로 과정을 진행시켜 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나다운 삶이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인 것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사유가 없는 부유물로 떠내려가듯이 살아온 날들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다. 겨우 삼십 년을 산나의 인생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고, 예정되어 있는 미래 따위는 없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몇 권을 책을 더 읽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는가? 몇 명의 남자와 만나야 짝꿍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나에게 미래가 있는가.


 나는 다시 토마토소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에게 외면당한 그날 밤도, 엉터리 자료를 만들다가 야근하고 돌아온 밤도, 나는 껍질 벗긴 토마토를 버터가 끓는 팬 위에 으깬다. 천천히 조용히 어두운 주방에 혼자 서서 토마토를 젓는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을 조절해 가며, 통후추를 갈아가며 적당한 와인을 넣으면서 계속 젓는다. 팬에서 올라오는 온기와 토마토와 버터의 향기가 좋다. 그렇게 나는 또 하루를 보낸다. 나에게 이것은 위로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그런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나의 인생을 위로받고 싶다. 아주 단순한 일에, 아주 본능적인, 외로움과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그런 위로. 잘 익는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고 큰 팬에 넣고 소스를 만드는 시간. 그 시간들이 주는 적막함과 고요함, 그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백을 느끼고 싶다. 나는 다시 나를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떠나 기로 한다. 

 

 가장 본능적인 곳으로 

 

 가장 즐거울 곳으로

 

 가장 맛있는 곳으로

 

 떠나자 일단, 

 

 떠나자 일단, 파스타 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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