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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Sep 06. 2017

we are just children.

그만 하고 싶어요, 9월까지만 일하겠습니다. 

이제 퇴사하겠습니다. 


“부장님, 잠시 드릴 말씀 있어요,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뭔데? 지금 말해도 돼”

“저 그만 일하려고요,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왜? 무슨 일 있어? 너 잘 하고 있었잖아.”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요, 제인생을 생각해 보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요.”

“회사 다니면서 하면 되잖아, 지금 생각하는 그 일 회사 다니면서는 못해?”

“네, 못해요. 더 오래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늦기 전에 찾아보고 싶어요.”


 7년을 패션 업계에 있었다, 그 말은 어느 정도는 업계의 굴러가는 상황 정도는 파악이 된다는 말이다. 

 뒤에 따라오는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만두고 뭐하는데?”

 “다른 회사 가니?”

 “회사 다니면서 하지 그래? 다달이 월급 꽂히는 거를 버릴 수 있어?” 

 나도 알고 있다, 지금까지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내 힘으로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 가능성들을 뒤로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들어오는 월급을 뒤로하고,

퇴사하겠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은 후배가 책과 함께 준 간식 


 그렇게 나는 회사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간다. 


결국 비행기를 예약했다. 편도 티켓.


 한 번도 편도 티켓을 끊은 적이 없었다. 

 항상 다시 돌아왔었다. 이곳으로. 

 아무리 즐겁고 평화롭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다시 돌아왔다. 이곳, 나의 위치로. 

 나의 위치.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만든, 나를 포함한 무언가 들이 만들어 놓은 나의 좌표.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그리고 무언가 들이 만들어놓았던 자리를 벗어나, 내가 만드는 자리를 찾아가고 싶다. 

 그래서 떠날 뿐, 돌아오지 않는다, 당분간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아빠한테 말하는 날, 아빠는 명동에서 돈가스를 사주었다. 메뉴부터 너무 촌스러워서 정말 아빠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집이었다. 

 “어때? 맛있지? 여기 유명한 집이야.”

 “응 맛있네.”

 아빠는 시종일관 맛있냐며 내 눈치를 봤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맛있다고 말했다. 

 “그래, 나는 삼십 년을 은행에서 일했어. 난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어. 근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고 싶은 거, 즐거운 걸 하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다시는 금융일을 하고 싶지 않아, 너도 그런 거겠지. 그래, 하고 싶은걸 해.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아. 너네 세대는 그게 맞아.”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맥주를 마셨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아빠의 그 말은 온 세상이 내 편이 되어준 느낌이었다. 


비행기를 예매한 밤, 아빠 엄마에게 카드를 써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잠들었다. 이것은은 불안정한 미래로의 출사표 같은 것 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 수 있다. 맞다. 내가 회사를 나온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전에 밀린 학습지를 숨겨놓고 오늘 꺼만 다 했다고 보여주는 듯한 불안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30년 동안 쌓여서 걸러지지 않는 것처럼 계속 쌓여있다. 스스로 만드는 의심에 대하여 나 스스로 증명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맥주나 한잔 마시고 다 잊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생각’이라는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한다. 아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회사는. 

 하지만 반드시 변할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증명의 결과물들은.

 

 "용감하고 멋진 젊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문신도 있고 매사에 쿨한 그런 엄마요. 그런데 지금 기분 같아서는 그냥......" 

 "그게 그게 나랑 똑같아서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린, 우린 그저 어린아이예요 우린 그저 발가벗은 어린아이라고." 

we are just children, we are naked children. 

 잠이 오지 않는 밤,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배우의 말에 함께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쿨하고 싶고 쿨하다고 생각하지만, 매사에 세련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맞다, 나는 그냥 어린아이일 뿐. 

 나는 그저 발가벗은 어린아이 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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