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가족은 특히 외가를 중심으로 강하게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모태신앙으로 성장하였고, 공교롭게도 대학교도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에 신의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공부하였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내 인생의 주인은 나로서 살아온 시간 동안 내가 갖게 된 한 가지의 의문은, 결국 신은 나와 함께 있는가.
신은 나와 함께 하는가
신이 나와 함께라면, 내가 신을 느껴야 하고 그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신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
다시,
신은 나와 함께 하는가
비엔비에서 바티칸까지 걸어서 20분의 거리를 가는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이놈의 인터넷은 아주 이탈리아 와서부터 계속 말썽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메일로 받은 티켓을 보여주지 않으면 바티칸 입장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많은 운이 좋은 일이 있었는가, 나는 다시 한번 운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바티칸 전체의 와이파이는 속도가 정말 심하게 느려서 투어 가이드들도 웬만하면 안 될 거라고 했다.
"나 인터넷 예약했는데 여기 지금 인터넷이 안돼서 바코드를 보여줄 수가 없어."
"어쩌나, 바코드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럼 저쪽 게이트 쪽에서 한번 해봐, 될지도 몰라."
게이트로 가기도 전에 인터넷이 되더니 티켓의 바코드를 북마크 할 수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우연이겠지......
신이 있다면, 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그가 진실로 나와 함께라면,
이 모든 나의 순간들이 그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 맞다면,
다시,
신은 나와 함께 있는가
시스티나 성당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티칸의 많은 방들을 지나야 한다.
지나고 지나고 지나서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사진 금지, 조용히 하라는 표지판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시스티나.
시간을 담고 있는 공기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들이 천장을 보느라 고개를 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단 나는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왔기 때문에 이 그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대학 때 배운 지식과 미리 사놓은 바티칸 가이드북을 토대로 이해하려 하였다. 그것은 아주 지식적이고 텍스트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림도 더 감상하고 싶어서 성당 가장자리에 주르륵 앉을 수 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옆에 있는 히스패닉 여자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둘이 같이 고개를 쳐들고 위를 쳐다본다.
"아빠, 이제 가요, 난 다 봤어요.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요."
"조금만 더 있자."
"......"
"저 그림이 무슨 의미인 줄 아니?"
"아니요, 몰라요."
나 역시도 오디오 가이드를 다시 듣고 뒤로 돌려 듣고 앞으로 돌려 들어도 그렇구나의 생각이지 이 그림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잘 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달과 해를 만들었어, 저기 달이랑 해 보이지?"
세상에, 그제야 저것이 달이고 저것이 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다음에 남자를 만들었어, 그 후에 여자를 만들었지. 그다음에 저거 봐봐,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어서 여자와 남자는 쫓겨나게 되는 거야."
"저거? 우는 그림?"
"어, 맞아. 그다음 저 뒤쪽을 봐봐."
꼬마와 나는 같이 고개를 뒤로 젖힌다.
"저 뒤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야, 물이 차올라서 도망을 가는 거지, 그런데 마지막 그림을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하게 되는 거야."
"저게 취한 거야? 자는 거 같은데?"
그렇지, 취하면 자는 게 맞는 거다.
나의 오디오 가이드도 거의 마지막 부분을 얘기하고 있었다. 2분 정도 남은 부분이었다.
"그림에서 보이는 인간은 희망을 상징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의 인간은 희망이자 미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시스티나 대성당의 그림은 결국 인간은 약하고 실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 부분을 몇 번을 돌려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신은 나와 함께 하는가
5분을 달려 숨을 몰아쉬며 몸을 난간에 기대 앞을 내다본다.
앞에 보이는 건물들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말도 안 되게 파란 하늘과 배터리가 충전된 아이폰과 (비록 5S이지만) 지치지 않는 튼튼한 다리와 계속 뛰어주고 있는 심장과 이 모든 것을 결심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용기가 있는데,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애인도, 남편도, 하다못해 직장도 없다. 모든 것을 다 버렸다. 무엇에 그렇게 쫓겨왔는지, 무엇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는지, 무엇을 그렇게 항상 달달 외우고 엑셀스럽게 살아왔는지, 덕분에 나는 정신과 상담을 5개월 정도 받았었다.
하지만 힘들게 하는 것도, 지치게 하는 것도, 포기하지 못했던 것도, 미련을 갖고 있던 것도 사실은 나였다. 내가 나를 버리지 못하면 나는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나는 더 이상 패션 엠디도 아니고, 대리님도 아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꾸역꾸역 아등바등하며 갖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여행자이고 그저 파스타를 좋아하는 한국에서 온 여자일 뿐이다. 나는 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들이 하는 말을 잘 하지도 못한다. 내가 얼마나 똑똑하든, 내가 영어로 된 책을 줄줄줄 읽어도 이들은 나에게 똑똑하다고는커녕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왔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지, 왜 여기를 왔는지, 여기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다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도 파랗게 계속 끝도 없이 파랗다.
베네치아 광장의 하늘도,
판테온의 하늘도,
로마 골목의 하늘도,
세인트 피터 바실리카의 하늘도,
콜로세움의 하늘도,
항상 그렇게 신은
공기처럼 하늘처럼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내 옆에 있었다.
다만 내가 너무 사는 게 바쁘고 지겹고 짜증 나서 모른 척하고 저만치로 치워버리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의 신은 어디 있는가,
당신에게 신이 있던 없던 어떤 모습이던 상관없이
모든 것을 오디오 가이드가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위에 보이는 시스티나 대성당의 그림은 결국 인간은 약하고 실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표현하려던 것과 같이 결국 인간은,
결국 우리들은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게 똥이든 보석 이든 간에.
그리고 알아채든 알아채지 않던 신은 항상 그곳에서 바로 당신 옆에서 공기방울처럼 당신 옆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