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요리는 삶이고, 삶은 요리이다.
프로다운 토마토소스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으며, 많은 요리 동영상들이 이 방법을 소개한다. 나도 이탈리아 피렌체에 와서 요리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그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다.
토마토의 바닥 부분에 십자가로 칼집을 내고, 그것들을 끓는 물에 넣었다가 껍질이 벗겨진다 싶을 때 빼낸다. 그 후에 찬물에 토마토들을 담가서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긴 후, 토마토를 잘라서 그 안에 있는 씨앗을 모두 분리하여 과육만을 걸러낸다.
이 방법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당히 귀찮다.
일단 토마토에 칼집을 내면서 물을 끓이고 끓는 물에 토마토들을 넣어서 들러붙지 않게 또 잘 저어 가면서 토마토 껍질이 몰랑거리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적당한 시간에 꺼내어 찬물에 담그는 것도 귀찮은데,
뜨거운 토마토를 손으로 잡고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정말 더 많이 귀찮은 작업이다.
여기까지도 너무 귀찮은데 씨앗을 벗겨내면서는 도대체 이렇게 많은 맛있는 부분들 (껍질과 씨앗 부분)을 버리는 것이 정말 이탈리아스러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물론 대부분의 조리법들이 캔 토마토 사용을 레시피에 적어놓는다. 나 역시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맛이 안 났다.
자, 그럼 피렌체에서 배운 가장 쉬운 토마토소스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첫 번째, 부드러운 토마토소스
이것은 모든 파스타와 소스로 사용될 수 있고, 메일이 아니라 바탕에 맛이나 색을 내는 소스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소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넣고 조리한다는 것이다.
‘올리브 오일을 넣은 냄비에 토마토, 바질, 마늘은 모두 한 번에 넣는 거야.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한 번에 재료를 넣게 되면 토마토가 열리게 돼, 그리고 그 틈으로 오일이 스며들게 되는 거야. 그래서 토마토가 오일을 머금은 상태가 되는 거지. 그 상태에서 냄비를 불위에 올려놓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려. 그 후에 한 번에 분리 기구에 넣어서 씨앗과 껍질을 분리시키는 거야.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지 않게돼.’
두 번째, 토마토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소스
이것은 보통 스파게티, 부루스게타에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조리순서와 방식이 다르다.
먼저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기름의 굴곡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늘은 찹찹해서 넣고, 그 후에 토마토를 잘라서 넣는다. 그 후 바질을 찹찹해서 넣는다. 그리고 토마토가 적당히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토마토를 으깨는 것이 아니라 토마토를 토스하면서 조리한다.
이 방법은 기름과 토마토를 분리시키기 때문에 토마토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고 각자의 향과 맛을 따로따로 담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스파게티 혹은 부르스게타에 어울린다.
재료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일정한 모양으로 토마토를 자르고 마늘도 일정하게 찹찹 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지만 세상 제일 프로페셔널한 방법에 비하면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전혀 다른 모양과 쓰임새의 토마토소스를 만들 수 있다.
같은 재료로 다른 소스를 만든다. 다른 목적에 의하여 다른 순서를 만듦으로써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왜 토마토소스를 만드는가, 사용하려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 얼마나 재료의 형태를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소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애는 어떤 게 좋아? 이것은 뭐가 틀리고 맞고의 개념이 아니야, 어떤 걸 선호하느냐의 문제이고 목적성의 문제인 거야. 판단은 네가 하는 거야.’
어려운 재료는 없다. (물론 한국에서 바질을 구하는 게 슈퍼에서 콩나물을 사는 것만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다른 맛을 가진 토마토, 바질, 마늘, 어디에서 언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다른 향을 가지고 있는 올리브 오일 중에서 최종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그 음식이 갖는 성향과 목적성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목적성은 요리사가 정하게 된다. 어떤 때는 부드럽게 만들어서 다른 소스 혹은 다른 음식과 곁들일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재료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강하게 나갈 수도 있다.
왜 하려 하는가, 그 행동을 하려는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얼마나 스스로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삶의 모양은 서로 다른 토마토소스처럼 서로 다르게 보인다.
왜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고 있는가,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얼마나 스스로를 스스로답게 만들 것인가.
어느 날 책상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든 생각은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가, 왜 하고 있지? 그래서 나도 저렇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시간과 목적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부장에게, 상무에게, 그리고 회사에게 달려있었다.
어느 날 요리수업에서 돌아오면서 든 생각은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가, 왜 하고 있지? 그래서 나도 저렇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렇게 되고 싶다.
시간과 목적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고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인 이 순간,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고 다행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와인을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려고 하고 있다.
단순하지 않으면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다. 우리는 어렵게 요리하지 않는다. 기본의 틀에서 창의적으로 본인의 요리를 만드는 것이 이탈리아 요리이다.
단순하지 않으면 삶이 아니다.
나의 오감이 살아있고, 그것들을 충분히 열고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르노 강가에 서서 하늘색이 변한 것을 보고, 나뭇잎의 색이 변하는 걸 보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나는 나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어렵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렇게 하고 이런 논리로 이런 걸 증명하고 이렇게 해서 저렇게 설득을 하고 그래서 결국 손바닥보다 작은 명함에 내 이름을 구겨 박고 싶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버리면서 왔는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모두 버리고 슬픔, 외로움, 감사함, 즐거움 모든 것들을 일단 나중으로 미루면서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기본의 틀에서 창의적으로 본인의 요리를 만들어 가는 것. 본인의 시간을 채워 가는 것.
그래서 요리는 삶이고,
삶은 요리이다.
아르노 강 건너에 괜찮은 카페가 있어서 책이나 읽으려고 나왔더니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강가를 보다가
우피치에 앉아서 하늘을 멍하게 보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랩탑을 꺼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Sto Firen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