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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쪽으로부터의 와인여정기

전쟁과 기후변화, 그리고 우리의 식탁까지

by 알로라 와인

2023년 12월 중순, 여느 때와 같이 다가오는 2024년 와인들의 선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하는 날짜의 2주 전에 컨테이너 부킹을 요청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해당 스케줄의 모든 컨테이너가 부킹 완료 된 상황이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스케줄로 조정을 해야 했다.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늦어지는 출항 일자만큼 늦어지는 한국입항 날짜를 확인하며, 더 빨리 부킹 하지 못한 나를 탓하기도 하고 와인을 기다리는 업장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이메일을 받았다.


유럽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운항 중이던, 선박 XXX가 미사일에 피격된 내용을 안내받아 긴급 공지 드립니다.


선박 XXX는 12월 OO일 바브엘만다브 해협을 통과하던 중, 미사일 공격을 받아 갑판 화재 및 컨테이너 1개가 밖으로 떨어진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선박 XXX의 피해 상황은 선사에서 취합 중이며, 자세한 내용 확인되는 대로 다시 업데이트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대부분의 선사에서 수에즈 운하 항해 일시 중단을 선언하였으며,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하는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세상에,
이 선박은 바로 내가 아깝게 놓친 그 선박이었다.
내가 놓친 선박이 미사일을 맞았다.


이틀 차이로 오더가 밀리고 그렇게 해서 놓친 그 선박은 예 멘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하여 컨테이너 1개가 바다로 떨어져 버린 상황이었다. 떨어진 컨테이너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화주가 누구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은 채 선박은 싱가포르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그 선박을 운항하는 사람들, 관리자들 그리고 모든 시스템까지, 이 사고를 보고받은 포워더 회사까지 모두 알 수 없는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그야말로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까봐야 아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XXX 선박을 마지막으로 수에즈 운하는 2023년 12월 말 봉쇄되었다.

구글지도에서 수에즈 운하를 검색해서 확대하면 진짜 끝까지 확대해야 가느다랗게 보이는 물줄기, 그것이 바로 수에즈 운하이다. 홍해와 지중해를 이어주며, 이집트에 작게 나있는 물줄기, 그 좁은 물줄기가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준다. 너무 좁아서 대형선박이 가로로 서게 되면 운하가 막힌다.

하아, 이 좁은 물줄기가 국제 물량이동의 20%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20%중에 작은 컨테이너의 한 부분에 나의 와인들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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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는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르는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 항로는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을 돌아서 오는 우회로를 선택하게 되었다.

수에즈운하 봉쇄 이후 선적 스케줄의 불안정성은 커지게 되었고, 늘어난 항로만큼 발생되는 탄소가스는 또 다른 미래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늘어나는 항로만큼 올라가는 운송료와 이로 인해 올라가는 세금금액에 스트레스받으며, 도대체 내 배는 언제쯤 오는지 트레킹 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과장님,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2024년 미국 대선이 진행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동 전쟁에 대한 휴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동 휴전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물류업계는 수에즈 운하가 제기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은 다시 원래의 항로를 찾을 수 있고, 화주들 역시 비용을 운송비용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이스라엘 "인질 석방 안 하면 전쟁"… 가자지구 다시 전운

휴전 합의로 잠시 안정을 찾았던 홍해 항로도 다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후티는 지난 2023년 가자 전쟁이 발발하자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홍해를 지나는 외국 선박들을 공격했다. 이 일대는 세계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데,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선박들이 우회하면서 해상 운임이 급등하는 등 피해도 컸다.


어쩐지 뭔가 스무스하다 했다.


치솟는 달러, 유로 환율과 원자제 가격, 불안정성이 커지는 국제정세 그리고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모르는 내수경기 침체, 우리는 아마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장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그동안 하던 일을 뚜벅뚜벅하며, 선적 트레킹을 하고 와인을 발주하고 운송스케줄을 확인하고 세금을 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우리의 전쟁은 과연 끝이 있을까요?


cda2b000-4d98-453a-a445-29e06c0fb310.jpg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총리실 밖에서 시위대가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의 즉각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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