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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Jun 19. 2024

버리는 마음

 “책 좀 정리하지? 버릴 거 버리고.”

 남편의 이 말은 나와 싸우자는 신호다. 아무리 부드러운 말투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집에서 아이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외는 대부분이 내 책들이다. 그러니 저 말은 당신이 오랫동안 간수하고 있는 ‘당신 책들’ 좀 버리라는 뜻이다. 물론 책을 놔둘 곳이 없고 더 이상 잘 읽지도 않는다면 책을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 말을 남편에게 듣는다면 더는 맞는 말이 아니다. 


 내가 책을 잘 버리지 않고 오래 간수하듯이 남편은 본인의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옷. 유행은 돌고 돈다는 신념이 지독하다. 5년 연애하고 결혼한 지 17년 차, 남편은 연애 중에 선물 받은 옷은 물론 우리가 처음 만날 때 입고 나온 가디건까지 여전히 들고 있는 사람이다. 20여 년 전에도 짙은 남색의 그 가디건에는 듬성듬성 보풀이 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긴 세월 보관만 하다 올해 초, 겨울 막바지에 꺼내 입었길래 나와 딸은 기겁하며 제발 벗으라고 사정했다. 한참 실랑이 끝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긴 했지만,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다. 


 그 옷에 담긴 추억을 소중히 여겨서 못 버리고 있나 잠시 생각한 적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옷은 못 입을 정도로 해어져야 버리는 것이 원칙이었고, 언젠가는 (유행이 돌아와) 입을 수도 있으므로 오직 그날을 위해 바리바리 싸서 집 안 구석구석 저장하는 것이었다.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기기의 제품 상자를 절대 안 버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은 본인이 쓰지만 언젠가 중고로 팔 수도 있으니, 그날을 위해 안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내 책은 쌓아두지 말고 버리라고 한다. 그러니 저 말이 싸우자는 신호가 아니고 뭐겠는가. 옷장 위 세 개의 수납 상자를 꽉꽉 채운 것도 모자라 둘째 딸 방의 옷장까지 빌려 쓰는 사람이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도 버금가게 책을 잘 안 버리기는 한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드문데도 책을 버린다는 행동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작가의 책이라면 더 심하다. 이십 대 때 좋아해서 다 사 모았던 하루키 책들은 종이 색이 누렇게 변했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창고에 오랫동안 모셔두었다. 올해 초 베란다를 정리하며 과감히 버리자 굳게 마음먹었는데 현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몇 개월째 문 앞 상자 속에 모셔져 있다. 남편을 이해 못 하듯 이런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다시 읽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되는데, 쌓아둔다고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중고 서점에 팔 수도 없는 책을 왜 그렇게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사는지 말이다. 


 책 욕심이 많은 편이다. 순화해서 말하면 책을 무척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에 당연하게 애착이 생긴다. 애착이 생기면 그저 ‘책’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내 책’이 된다. ‘내 책’이 되면 우리 사이에는 공유하는 기억이랄지 추억이 생겨난다. 그때부터 책은 나에게 속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 버리기가 어려워지는 걸까.


 돌이켜보면 책뿐 아니라 아이들이 어릴 적 그린 그림들도 그랬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괴발개발 그려놓은 그림도 막상 정리해야 할 때면 마음이 고되었다. 늘어나는 짐들이 도저히 감당되지 않을 땐 추리고 추려 하나라도 남겨놓으려 애썼다. 정작 아이들은 기억도 못 하는, 나 혼자만의 추억을 부여잡고 끝끝내 놓지 못한 셈이다. 


 요즘은 책을 잘 사지 않는다. 사기 전부터 언젠가 버릴 마음이 힘들어서. 나이가 들수록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책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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