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같이 가볍지만

사람_오지랖 선생님

by 전소유

이 학교 도서관은 인문교육부 소속으로 H선생님이 담당이다. H선생님은 젊은 여선생님으로 올해 처음 도서관을 맡은 듯했다. 첫날 나에게 도서관을 소개해주고 앞으로 할 일을 알려줬다.


그런데 도서관에 자주 오는 또 다른 선생님이 있다. 곧 정년을 앞두었을 연세 지긋한 남선생님 D가 점심시간과 청소시간에 계속 온다. 누구신지 대놓고 물을 수는 없다. 그래서 도서관이 소속된 인문교육부장 선생님이신가 해서 업무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인수인계를 전혀 받지 못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겨우 한 두 가지 던진 질문에 D선생님은 TMI로 답하신다. 주로 이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는데 본인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고 정성을 쏟았는지에 대해서다. '예산이 없다, 교장도 안 나선다.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도서관을 멋지게 만들어냈다.' 뭐 그런 자기 자랑이 절반인 이야기. 적당히 맞춰주고 웃어주다 보니 입가에 경련이 생긴다. 이것이 사회생활이란 것인가.


알고 보니 인문교육부장 선생님이 아니다. 도서부 동아리 담당이라 점심시간에는 도서부원들의 도서관 봉사를, 또 도서관이 포함된 구역의 청결 담당이라 청소하는 학생들을, 감시하거나 살피러 오신 거였다. 리모델링까지 참여하실 정도니 아마 이전에 도서관을 담당하셨던 게 아닐까 예상한다. 어쨌거나 처음에는 D선생님이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참 크시구나 했다.


매주 금요일은 동아리 활동 시간으로 도서부는 자연히 도서관에 모인다. 이 날은 내가 1시간 일찍 퇴근이라 뒷마무리는 늘 D선생님에게 부탁드린다. 그러던 어느 날 월요일에 출근하니 내 책상에 '도서 연체자 목록'이 인쇄된 A4용지가 놓여있다. 옆으로 치워두고 일단 컴퓨터부터 켠다. 언제나처럼 교내 메신저를 실행해 나와 별 상관없는 메시지들을 넘기다 우연히 '보낸 메시지' 탭을 보게 되었다. 지난주 금요일 내가 퇴근하고 조금 있다 '도서관'에서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내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메시지는 도서관 담당인 H선생님에게 '연체자 반납 안내'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D선생님의 오지랖이다. 황당했다.


이제까지 H선생님과 교내 메신저를 따로 주고받은 적이 없다. 주로 휴대폰 문자로 업무 대화를 나눠왔다. 그리고 연체자 관련해서는 H선생님과 협의 후 이미 각반에 목록을 안내한 상황이었다. 먼저 든 생각은 H선생님이 이 메시지를 내가 보냈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였다. 도서관 실무자가 책임자에게 업무 요청을 하는, 분명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메신저로 '제가 이 메시지 보내지 않았어요' 변명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이미 벌어진, 내 손을 떠난 일이었다.


무엇보다 열받는 건 '도서관입니다'로 시작되는 메시지의 첫 문장이었다. 도서부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면, 이전에 도서관을 담당했다면, 이래도 되는 건가? 만에 하나 그동안 사서자리가 비었던 시기에 이런 식으로 업무가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도서관입니다'라고 시작할 게 아니라 자신을 밝혔어야지. 도서관에 대한 과한 애정이든 넓은 오지랖이든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D선생님의 깃털처럼 가벼운 행동이 나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일상은 흘러가고 D선생님은 꼬박꼬박 점심시간에도, 청소시간에도 도서관에 들린다. 며칠 못 오다 오랜만에 온 날엔 본인이 얼마나 바쁜지 한참 떠들어대고 돌아간다. 나는 퍽 반갑지 않지만 사회생활용 웃음을 띠고 응대한다. 앞서 사건이 없었다 쳐도 나로서는 참 부담스러운 캐릭터다. 당신 발가락 모양이 이상해서 크록스를 사봤는데 발이 영 불편해서 새로 해외에서 주문했다는 둥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왜 자기 발을 만지작 거리며 하는 건지. 그래서 책 정리나 폐기도서 등록 일을 일부러 미루어 두었다가 D선생님이 오실 즈음 바쁘게 움직이는 수를 쓰곤 했다.


그런 나의 꼼수에도 아랑곳 않고 언제나 "안녕하세요"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때로는 뜬금없이 '오 솔레미오' 가곡을 불러대며 도서관을 찾는 D선생님. 나 말고도 마침 도서관에 학생이 보이면 누구에게나 말을 걸며 이런저런 TMI 이야기를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는 어떤 선생님일까 무척 궁금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D선생님의 성량 높은 목소리가 도서관으로 들이닥친다. "퇴청하셔야지요." 금요일마다 D선생님의 단골 인사다. 어쨌거나 이 학교에서 늘 "주말 잘 보내십시오" "주말 잘 보냈습니까" 겉으로나마 반갑게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유일한 선생님이긴 하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도서관에 오니 도서관이 좀 살아있는 것 같다'라고 말해준 적도 있다(워낙 TMI가 많아 이제 기억났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에 대한 과한 애정 혹은 단순한 오지랖 선생님의 깃털처럼 가벼운 행동이 밉살스럽지만은 않다. 나혼자 미운 정이 들었나. 꿍했던 마음이 살째기 녹는 것도 같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