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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엇이든 말해연 Feb 17. 2023

식이장애의 뿌리를 뽑는 방법

식이장애의 재발

식이장애는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식이장애가 재발하기 직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내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경제적으로 불안했고, 하고 싶은 일도 불투명했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렸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그래 좀만 더 버텨보자. 살아내보자.‘하며 살았는데 올해 초부터 더 힘드네. 뭐 이래. 의연하고 싶다.“라고. 간혹 힘든 일이 가도 더 힘든 일이 오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식이장애가 재발했을 때가 딱 그랬다.


나는 힘듦을 잊기 위해서,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다시 폭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식을 하니 당연한 싸이클로 절식도 다시 하게 됐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빈도가 더 잦아지고, 강도도 더 세졌다는 점이다. 폭식의 빈도가 잦아지니 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올라왔고, 많게는 하루에 2-3번 먹고 토를 했다. 운동도 강박적으로 빡세게 하기 시작했고, 몸무게 체크도 매일같이 했다.

그때의 나는 내 상황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폭식과 절식, 먹토를 할수록 사는게 더 힘들어졌고, 죽고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죽고싶다는 말의 의미는 사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였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바로 나의 상태와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이전에 식사일지를 쓰며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내가 왜 폭식을 하게 됐는지는 알아차리긴 했지만, 그 감정들과 상황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세상에 답을 구했다. 끊임없이 책과 영상을 봤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도 답을 구하고자 했다. 그 결과로 얻은 답은 식상할 수 있지만, ’명상‘’마음돌보기‘ 그리고 ’탈다이어트‘였다.


#명상은 생각을 없애는 행위가 아니다.

당시 상황적인 힘듬이 감정적으로 힘들게 만들어서 식이장애가 왔는데, 유튜버<마인드풀 tv>의 영상이 많은 도움을 줬다. ’명상‘을 해보려고 했는데 혼자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마이드풀 tv>에 올라와있는 명상가이드를 따라 명상을 했다. 명상을 하고나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릴 수 있게 돼서 좋았다. 흔히 그리고 나도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명상은 생각을 없애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마인드풀 tv>의 영상을 따라 명상을 하다보면 생각이 없어지기보다 생각이 명료해졌다. 내가 왜 힘든지, 이 힘듬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깨달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 지금, 여기를 살기. 그래서 늘 잘 되지는 않아도,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기 위해 그리고 결국은 어떠한 것들은 흘려보내기위해 꾸준히 명상을 했다.


#마음을 돌보는 감정일기

그리고 이전에 식사일지를 썼던 것처럼 이번에는 다이어리에 감정일기를 썼다. 명상을 통해 알아차린 마음들을, 내 마음이 왜 그랬던 것 같은지를 되도록 매일 썼다. 나의 상태를 글로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이나, 상황을 객관화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글로 적어보니 생각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괴로워하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내가 힘들 수밖에 없구나 알게 해줬다.

’명상‘을 할 때 깨달음이 있기 위해서는 어쨌든 계속해서 답을 찾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감정일기로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면 심리학, 철학 서적을 자주 들여다보며 해답을 찾았다. 가끔은 자기개발서, 에세이, 소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책을 읽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얻을 때도 있고, 머리로만 알고 있고 체화가 되지 않아서 잘 까먹는 것들을 상기할 수 있어서 내게 도움이 될 책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들여다봤다.


#다이어트 자체를 그만두는 ’탈다이어트‘

그리고 식이문제를 당장 괜찮아지게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인 ’탈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탈다이어트‘는 말그대로 ’다이어트를 그만두는 것‘이다. 폭식을 하지 않으면 절식이나 먹토를 할 일도 없고, 절식이나 먹토를 하지 않으면 폭식을 할 일도 없다. 나의 경우 폭식과 절식, 먹토를 하면서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고, 어느 순간 생리를 3개월 꼴로 한 번 하거나 한 달에 두 번을 하는 등 불규칙하게 하다가 길게는 6개월동안 생리를 하지 않기도 했다. 여성의학과(산부인과)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는데, 호르몬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뇌에서 생리를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 수치가 낮다고 했다. 폭식하고 토하고 절식하는 싸이클을 반복하니 몸에 에너지가 부족해서 뇌가 생리하는 데에 쓸 에너지까지 가져다 몸을 유지하는 데에 쓰고 있는 것이었다. 살면서 늘 생리를 하는 것이 싫었다. 배도 아프고, 기분도 안 좋아지고, 식욕도 늘어나서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유기체이다. 자궁은 여성의 신체기관 중 하나이고,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주어 점차 전체적으로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 먹었다. 음식의 종류와 양에 상관없이 다 놓아버리고 먹고싶은 것들을 모두 먹었다. 당연하게 일단 살이 쪘다. 아마 식이장애를 겪는 많은 분들이 이것이 제일 두려워서 다이어트를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 또한 불어나는 살을 보고도 계속해서 먹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다이어트로 돌아간다면 다음 번에 올 후폭풍이 얼마나 셀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체중계도 치워버리고, 집에 있는 모든 거울을 천으로 덮어버리고 6개월 넘게 지냈다. 그렇게 외형적인 것을 억지로라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모두 먹으니 어느 순간 건강한 식사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동안 억눌렸던 식욕을 해결하느라 매일같이 빵, 떡볶이, 피자, 치킨 등을 먹었는데 점점 밥, 찌개, 반찬 등 한식 위주로 식사를 하게 됐다. 간식도 매일같이 거의 식사와 동일한 양을 먹었는데, 간식을 계속해서 먹어주니 점점 그 양이 줄었고 어떤 날은 간식을 한 번도 먹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식욕이 안정화됐고, 나는 음식 생각이 아닌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졌다. 물론 극심하게 다이어트를 할 때보다는 3-4kg 더 나가지만, 하루에도 1-2kg 사이에서 몸무게가 변하는 것을 보면 3-4kg는 아주 작은 수치가 아닌가. 그리고 나는 훨씬 정말 훨씬 더 행복해졌다. 예전에는 사람들과의 식사자리가 생기면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몇시에 먹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사람들과의 시간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먹기 시작하면 고삐가 풀려 음식만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다. 허겁지겁 음식만 입에 넣지 않고, 음식 맛도 느끼고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집중하고 음식을 탐하지 않고 나눠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가 정말 감격스럽다. 하루종일 식단 생각을 하면서도 욕망하는 음식을 생각하는 시간이 사라지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내 삶을 채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삶이 훨씬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나는 요즘도 여전히 식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신체와 관련된 영상들을 본다. 나는 내 몸과 평생을 함께 해야하고, 내 몸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끼를 잘 챙겨먹고, 운동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쉼이 필요할 땐 쉬고, 잘 자려고 노력하면서 매일을 소소하고 행복하게 지낸다. 이렇게 지낼 수 있게 된 데에는 식이장애가 괜찮아진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많은 이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남들의 말과 시선때문에 내 삶의 안정감, 평온함, 행복함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내 삶을 살아갈 내 자신을 잘 보살폈으면 좋겠다.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 식이장애가 나아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비들을 잘 넘기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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