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일지' 쓰기
나의 식이장애는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배고픔과 배부름이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늘 너무 배고픈 채로, 너무 배부른 채로 지냈고 결국에는 먹고 토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하는 빈도수가 잦아지고 몸은 더 나빠졌다.
오늘 이야기하는 방법은 먹고 토하는 지경이 심하지 않을 때에 내게 적용했던 방법이다. 이 때의 나는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고, 폭식과 절식을 반복했고, 운동 강박도 심했지만, 체중이 심하게 줄지도 않았고, 생리도 중간중간 끊겼다가 다시 하기를 반복했지만 오랜 기간 끊긴 적은 없었다.
이런 상태의 나에게 적용했던 방법은 ‘식사일지 쓰기’였다. 책<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를 읽고, 나의 식이가 대부분 감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됐고,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식사일지 작성’을 쓰기로 결심했다.
식사일지를 쓰는 방법은 1. 날짜 2.먹거나 마신 시간 3.먹은 음식 4. 먹기 전에 하던 일 5. 먹기 직전에 하던 생각 6. 먹기 직전에 느낀 감정 7. 배고팠는지의 여부 8. 먹은 음식을 어떤 식으로든 몸 밖으로 내보냈는지의 여부 순서로 식사든 간식이든 먹을 때마다 일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지를 쓸 때 나의 행동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나 자신을 관찰하고 정보를 기술한다는 자세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식사일지를 쓰기 시작하고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제때에 챙겨먹는 연습을 했고, 간식도 원한다면 식사와 구분해서 먹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개념인 마인드풀 잇팅을 식사에 적용하여 먹을 때에는 먹는 것에 집중을 했고, 먹고 나서는 바로 식사일지를 작성했다. 그래야 기억을 왜곡하거나 잊지 않고 쓸 수 있었다. 식사일지를 작성하던 시절을 돌이켰을 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 시절 나는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식이장애를 좀 더 악화시켰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비건 식사에 대한 제대로된 공부를 선행하지 않은 탓에 영양소를 불균형하게 섭취했고, 내 몸으로 하여금 자꾸만 음식(영양소)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데 비건을 지향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일단 몸의 회복을 우선으로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몸이 회복되고 나서, 비건 식단에 대한 공부를 하시고 비건을 행하신다면 건강하게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아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식사일지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지를 쓰다보면 자주 반복되는 단어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사람과의 관계 속 상처,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 무기력이 음식에서 위로를 찾게 했다는 것을 식사일지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외로움은 늘 내게 존재했고, 하고, 할 것이며, 그럴 때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고, 평생을 함께 해 줄 동반자는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을 통해 내 식이 문제는 조금씩 나아졌다.
이외에 읽은 책과 유튜브 영상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책<감정식사>를 읽고 감정의 바퀴를 알게 됐다. 감정의 바퀴는 감정에 좀 더 섬세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도와줬다. 예를 들어, 기쁜 감정은 행복하다, 신나다, 기쁨에 넘치다, 우쭐해지다로, 화난 감정은 흥분하다, 화나다, 격노하다, 격분하다로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언어화할 수 있게 되자 내 마음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책<감정식사>를 통해 공복감을 느끼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식사나 간식을 먹기 전에 지금 내가 어느 정도 배가 고픈지 체크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이유가 정말 배고파서인지 아니면 어떤 감정 때문에 먹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인지 구분하는 연습을 했다. 물론 이유가 둘 중 무엇이든 먹고싶으면 먹었다. 그러나 점차 정말 배가 고픈 것이 아니면 먹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당장은 음식으로밖에 어찌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튜버<헬로우 애브리바디>의 영상을 보고 배부름을 느끼는 연습도 했다. 위에 썼듯이,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정도 배가 고픈 것이, 배가 부른 것이 정상적인 느낌인지 알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배고픔과 배부름을 단계별로 스스로 측정해봄으로써 어느 정도 느낌일 때 더 늦지 않게 밥을 먹어야하고, 어느 정도로 느껴져야 내 몸에 알맞은 식사를 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됐다.
나는 그해 6/30부터 11/10까지 식사일지를 작성했는데, 근본적인 외로움을 깨닫고 받아들였을 때 나의 일지는 끝이 났다. 물론 그 후에 또 살아가면서 식이장애가 재발하는 시기가 온다. 애초에 식이장애를 겪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한 번 겪었던 식이장애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관리하며 살아야하는 것 같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마르고 싶다는 욕구,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속지 말았으면 좋겠다. 식이장애에 휘둘리는 과정만큼이나 회복을 향해 가는 과정도 험난하다. 혹시 그대도 나처럼 그 과정을 겪고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힘내서 자기 사랑과 건강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때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알쓸신잡에 나왔던 유시민님의 말씀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글의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외로운 이유는 내가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타인이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듯이 나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외로워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완전치는 않아도 나를 깊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