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에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아이 어린시절에 아이와 떨어져서 지낸 엄마들이 의외로 많다.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혹은 남편 자격증 뒷바라지 때문에…그런 경우, 대신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은 대부분 양가 부모님들이다.
어린 시절에 아이랑 떨어져 지낸 엄마들의 특징은, 아이가 커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게 혹시 떨어져 지낸 그 시간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
밀라논나님의 책을 읽어보면 아이 2-3세 무렵에 아이를 한국에 두고 유학 다녀온 이야기가 나온다. 국비유학생으로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다른 엄마들이 자기 아이 이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밤마다 한국에 두고온 아이 생각에 울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1년 만에 아이를 이탈리아로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생 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뒤,
배운 것이 있다.
본인이 해야 할
역할과 몫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것.
타인에게 미루거나
내려 놓을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
그후 밀라논나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워킹맘들이나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고 한다.
양육에도 때가 있어요.
때를 놓치면 힘들어요.
삶의 우선 순위를 알고,
삶의 본질에 파고 드세요
사실 나도 둘째 30개월 무렵 큰애 해외 영어연수를 위해 둘째와 몇 개월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게 과연 맞는 선택인지 자신이 없던 나는, 유명 교육블로거님께 댓글로 문의를 했고, 그 분은 뜻밖에 장문의 답글을 남겨주었다.
답변의 요지는, 무엇을 위해 둘째를 홀로 남겨두고 해외에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30개월 둘째 옆에 있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냐는 질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강경한 대답에 뜨끔했으나, 이미 답정너 상태였던 나는 결국 그렇게 큰애를 데리고 해외로 떠났고, 그 때 둘째와 떨어져지낸 몇 개월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집안일, 아이 식사만 그럭저럭 챙길 수 있다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모님 독립기는, 집안에서 ‘엄마’(역할을 할 누군가…)라는 존재의 필요성과 아이의 정서 문제, 자녀 양육에서 남이 대신 해줄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여성의 경력 유지의 비용, 출산과 육아의 필요조건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하게 했다.
많은 성공한 여성들이 말한다. 한 여성의 성공 뒤에는 다른 여성의 ‘희생’이 있다고.
이 말의 깊은 뜻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또한, 설사 누가 나 대신 기꺼이 희생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엄마인 나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왜 이제서야 뼈져리게 느끼게 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넘 고맙게도 잘 자라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매일 하교 후 혼자 간식, 때로는 밥까지 챙겨먹고 학원에 가는 둘째한테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힘들어.
엄마, 다른 애들도 다 이렇게 해!
씩씩한 둘째의 말에 나의 우려는 씻은 듯 사라졌다.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어린시절이 그립고, 밥도 잘 챙겨먹이지 못하고 학원 뺑뺑이시키는 현실이 안쓰럽고, ‘희생‘이라는 필수양분 없이 자라난 아이들에게 어떤 후과(后果)가 나타날지 몰라 걱정스럽긴 하지만,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