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없으면 큰일 날 것 같던 집안은 다행히 그럭저럭 굴러갔다. 청소는 주말에 한번씩 몰아서 하고, 음식은 외부에서 공수하고...할 일은 좀더 많아지고 그만큼 부지런해져야 했지만, 충분히 할만 했다. 무엇보다 이모님 눈치를 안봐도 되니 한갓지고 좋았다. 용기 내어 부딪혀보니 다 할 수 있구나~ 자신감이 생겼고 식비든, 생활비든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도 생각보다 컸다.
아이 저녁밥을 챙겨주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기면서 나의 하루는 5시 50분에 시작되었다. 간단한 아침거리(볶음밥, 두부구이, 계란후라이 등)와 아이 간식(과일)을 준비해놓고 7시쯤 집을 나서면, 남편이 아이 아침을 먹여서 학교 보낸 후 출근했다.
저녁에는 늦어도 5시 30분에는 회사를 나섰고, 가까스로 아이 저녁을 먹여 7시까지 학원을 보낼 수 있었다.
생활은 좀더 분주해지고 몸은 고단해지고 회사 일도 상당부분 내려놓아야 했지만, 매달 통장에 찍히는 돈은 더없이 달콤했다. 이모님 비용과 작은 집 이사로 매달 330만원의 돈을 고스란히 세이브할 수 있었다. 연간 4천만원의 큰 돈이다. 그간 맞벌이 하면서도 저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드디어 저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결혼한지 18여 년 만의 일이었다.
월저축 +3,300,000원, 성공적.
이렇게 나의 이모님 독립 일지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생각지도 못한 큰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주의깊게 읽은 분이라면 눈치채셨을지 모르지만...정말 큰 한방이었다. 그동안 쓴 글에는 '나'의 입장만이 나와있다. '아이'의 시각은 감안하지 못했다. 또 밥이니, 청소니, 돈이니...눈에 보이는 것만 고려했지, 눈에 안보이는 부분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이'의 시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오후가 되면 체크카드 알림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10.12 코리아세븐 1700원
10.12 씨유(CU) 2000원
10.12 코리아세븐 4000원
10.12 맥도날드 7800원
10.13 씨유(CU) 4300원
10.13 코리아세븐 3700원
10.13 씨유(CU) 1800원
도대체 뭘 그렇게 사먹는거지...?
음료수, 과자, 초콜렛…아이가 편의점에서 사먹는건 다양했다. 출근 전 사과, 오렌지 등 과일을 간식으로 챙겨놓고 가는데도 왜 굳이 군것질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줄기차게 편의점을 찾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방, 거실, 주방 등 온 집안에 전등이란 전등은 다 켜진 채 침대 위에는 과자 봉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불을 다 켜놓고 있어? 전기세가 아깝지도 않나?
하루는 화가 나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냉장고에 과일 넣어놓고 가는데, 왜 맨날 군것질을 하니?
미안해
그런데 방마다 불은 왜 켜놓은거야?
......무서워서.
그제서야 나는 매일 하교 후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좀 적막하겠다..
낮에라도 빈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 수도 있겠구나.
나는 어릴 때 엄마도 집에 계시고 형제들이 많아 집에 혼자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기에, (형이 기숙사에 가있어) 외동과 다름없는 둘째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덩치만 컸지, 아직 초등학생일 뿐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나긴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달도 넘는 방학 동안 아이를 어떻게 혼자 내버려두지?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역시 이모님 독립은 무리였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