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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The Rests Oct 22. 2023

피할 수 없는 갈등

아시시 순례 에세이: ⑤ 갈등해결과 리더십

순례를 이끄는 마가렛이 점심시간 즈음에 내게 우리 소그룹에 미셀이 새롭게 합류할 것 같다고 하면서 그래도 괜찮은지 내 생각을 조용히 물었다. 순례 여정이 3분의 1 정도 지난 때였다. 우리 그룹의 다른 분들에게도 따로 한분씩 그분들의 의사를 물어봤는데 그분들은 다 괜찮다고 했단다. 순례일정 두 번째 날 아침 마가렛이 4-5명 규모의 소그룹을 정해주어 우리는 그 소그룹 안에서 서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한 터였다. 그 그룹 안에서 어느 정도 라포가 형성된 시점에 왜 갑자기 소그룹 간의 멤버 조정이 일어나야만 하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해 나는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건지 마가렛에게 물었다. 마가렛은 미셀이 속했던 원그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대신 미셀이 여성그룹 안에서 좀 더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간단히 대답을 해줬다.


매사추세츠에서 온 미셀은 여성 목사로 순례 여정 둘째 날부터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8시부터 시작하는 자율적인 아침식사 후 9시 정각에 시작하는 하루의 첫 일정에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례자들 안에서 미셀을 아침식사 시간에도 보지 못했다고, 미셀이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 누군가가 숙소로 올라가서 미셀을 깨워서 모임에 참석케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웅성임이 있었고 순례 코디네이터 마가렛과 쥴리에게 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쥴리는 마가렛을 쳐다보면서 마가렛이 대답해 주기를 기다렸고 마가렛은 잠시 침묵 후 그냥 미셀을 기다리자고 했다. 그리고 전체 모임은 계속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미셀이 허둥지둥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예상대로 미셀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전체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모임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미셀이 계속 모임시간에 늦는다는 것, 순례 여정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화려한 장신구와 강렬한 원색의 옷을 입고 나온다는 점, 식사 시간에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발생했다. 뒤늦게 우리 소그룹에 합류한 미셀 때문에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믿을 수 없었지만 미셀의 어떤 행동과 말속에서 우리 그룹 안에서 나이가 제일 어리고 게다가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를 좀 만만하게 여기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나를 조종하려는 어떤 미묘하지만 분명한 의도가 감지됐다. 순례 여정의 절반이 지났을 즈음, 결국 마가렛에게 내가 겪은 불쾌한 상황들을 나누고 내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구했다. 마가렛은 내 설명을 듣고는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중재하기 전에 우선 내가 미셀과 단 둘이 그 불편했던 일들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게 많이 어려울 것 같으면 마가렛이 미셀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나서 셋이 같이 만나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조정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미셀의 이전 그룹에서 미셀과 부딪혔던 사람, 잭과도 한번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지 내게 조언을 해줬다.


그날 마가렛의 조언대로 나는 저녁식사 후에 잭과 따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었다. 나는 잭에게 나와 미셀과의 갈등상황에 관해 설명하며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잭에게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잭 본인이 미셀과 겪었던 갈등에 대해 내게 말해줬다. 미셀이 잭에게는 나와는 좀 다른 형태로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그 소그룹 모임 자체를 매우 어렵게 만든 정황을 알게 됐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잭은 더 이상 그 상황을 참고 견디기가 어려워 마가렛에게 SOS신호를 보내고 마가렛에게 자신을 다른 소그룹으로 옮겨달라고 일종의 소그룹 조정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가렛이 그 문제를 놓고 따로 잭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미셀과도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잭이 그 그룹에서 나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미셀이 그 그룹에서 나가는 것이 좋을지는 최종적으로 잭과 미셀 둘이 알아서 결정을 하도록 했단다. 결국 미셀이 그 소그룹을 떠나기로 하고 마가렛이 미셀을 우리 그룹에 합류할 수 있도록 조정했던 것이다.


잭과의 대화가운데 내가 미셀을 통해 느꼈던 불편한 감정들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이 되면서 마가렛의 조언처럼 마가렛의 개입 이전에 내가 미셀과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 날 소그룹 시작 전에 용기를 내어 미셀에게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미셀의 낯빛이 순간 바로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침착하게 미셀에게 미셀이 내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차분히 설명하고 ‘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 같다(You crossed the line.)’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제야 미셀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지못해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더 이상의 소그룹 조정은 없었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된 다른 소그룹 멤버분들과의 만남도 소중했기에 내가 속한 소그룹을 떠나지는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어 얼마 전에 우리 소그룹으로 옮겨온 미셀이 다시 다른 소그룹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며칠 남지 않은 순례일정 여건상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성스로운 순례지에 순례를 왔다고 해서 순례자들 모두 각자의 독특한(때론 문제적) 캐릭터와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상기했다. 미셀과 일대일 소통이후에도 솔직히 나는 소그룹 안에서 미셀과 가까이 앉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그 상황이 지속적으로 내게 어떤 불필요한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러나 우리 소그룹 안에는 30년 이상 지적 장애 남동생과 함께 살고 결혼한 지금도 남동생이 사는 곳 근처에 살면서 동생을 돌보는 로라 목사, 6명의 자녀를 키운 샌디가 있어 나와는 달리 그 두 분이 순례 일정 마지막날까지 미셀을 묵묵히 사랑으로 품어주었다. ‘이 분들 때문에 마가렛이 미셀을 우리 소그룹으로 보냈구나' 순례가 마무리될 때에서야 상황이 마음으로 이해되었다.


Piazza del Comune e Tempo di Minerva 전경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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