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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Oct 22. 2023

모든 상반된 가치가 공존하는 삶

아시시 순례 에세이: ④ 순례 일정과 상세한 하루의 일정

11일간 진행되었던 순례는 매일 묵상할 주제가 섬세하게 정해져 있었고 그날의 주제에 맞춰 아침부터 저녁까지 순례자들이 함께 할 활동과 나눌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짜여져 있었다. 일정 중 주일이었던 6일째 되는 날을 제외하고 총 10일간, 주어졌던 10개의 묵상 주제는 다음과 같다.


Day 01  시작과 끝(Beginnings and Endings)

Day 02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의 발자취(In the Footsteps of St. Francis and St. Clare)

Day 03  남성성과 여성성(Masculine and Feminine)

Day 04  비우고 벗어내는 것과 꾸미고 장식하는 것(Stripping and Adorning)

Day 05  큰 것과 작은 것(Big and Small)

Day 06  주일, 자유시간

Day 07  침묵기도와 행동(Contemplation and Action)

Day 08  홀로 있음과 공동체, 침묵의 날(Solitude and Community, Day of Silence)

Day 09  삶과 죽음(Life and Death)

Day 10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Everything and Nothing)

Day 11  끝과 시작(Endings and Beginnings)


이 일정 중에 8일째 되는 하루의 상세한 스케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07:30  심플 프레즌스(Simple Presence) 선택사항

08:00  아침식사

09:00  아침 관상기도 연습: 프란치스코 전통에 따른 성찰기도

10:00  도보로 성 프란치스코의 은둔처, 카르체리 수도원으로 이동

13:00  카르체리 수도원 근처에서 점심식사(도시락), 수도원 내에서 침묵, 각자 원하는 시간에 숙소로 이동, 휴식

18:00  저녁 모임 - 소그룹(Pilgrim Circles) 모임 후 전체 모임

19:30  저녁식사


프란체스코의 은신처였던 카르체리 수도원(The Eremo delle Carceri) (2013년 9월)


순례자들 중에 원하는 사람들은 아침식사 시간 30분 전인 7시 30분에 수녀원 내부의 작은 예배실에 모여 함께 침묵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 시간에 참여할 수 있었던 순례자들은 예배실 입구에서 샌디의 아침인사를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심플 프레즌스 코디네이터(Simple Presence Coordinator)’ 역할을 맡은 샌디는 가장 먼저 예배실로 내려와 초에 불을 붙여 예배실을 밝히고 입구에서 순례자들을 미소로 반기는 사람으로 공동체를 따뜻하게 섬겼다. 아침 기도시간에는 샌디 외에도 ‘사제(Chaplain)’ 혹은 ‘시인(Bard)’ 직분으로 공동체를 섬기기로 자원했던 사람들 게비, 로라, 애니, 존 등이 자발적으로 일자를 정해 돌아가면서 간단하게 기도문을 낭독하거나 혹은 시를 읊어주곤 했다.

    

8시가 되면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모여 빵, 과일, 요구르트, 그리고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전체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9시 전체 미팅은 언제나 어김없이 9시 정각에 시작했다. 이 시간에는 이 날 하루 내내 묵상할 주제와 이에 맞춰진 일정들을 같이 확인하고 어떤 날은 ‘음악가(Music Maker)’로 공동체를 섬긴 수의 인도에 맞춰 찬양을 하고, 어떤 날은 마가렛과 쥴리가 미리 준비한 이미지로 그림 묵상(Visio Divina)의 시간을 갖고, 또 어떤 날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삶과 관련해 저술된 책 일부 내용을 발췌해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이 아침 모임시간은 약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였고, 이 시간을 마치면 10분에서 15분 간의 휴식 후 바로 아시시 시내에 그날의 주제에 맞춰 우리가 방문해야 할 장소로 둘씩 팀을 짜서 함께 이동했다. 아시시가 골목길이 구불구불한 오래된 중세도시이다 보니 잠깐 한눈을 팔면 순례자 누구나 순식간에 무리에서 벋어나 길을 잃기가 십상이었다. 그래서 순례자 중 누군가가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고 길을 찾아 숙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수녀원 밖에서 이동시에는 언제나 일종의 짝꿍(Buddy) 시스템을 활용해 움직였다.


해가 지기 전 오후 일정은 일반적으로 4-5시경에 일단락이 되었다. 7시 30분 저녁식사 전 마지막 전체 모임 시간은 6시에 시작했는데, 즉 매일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가량의 자유시간이 순례자들에게 주어진 셈이었다. 이 시간에 순례자들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자며 좀 쉬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근처 카페에서 독서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수녀원 어딘가에서 기도 혹은 묵상을 이어갔고, 또 어떤 분들은 아시시 시내를 산책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6시에는 순례를 시작할 때 구성된 4-5명의 소그룹으로 모인다. 4개의 소그룹은 전체 모임 장소 옆쪽의 소규모 미팅 장소 4곳에 흩어져 모임을 갖었는데 이때 소그룹에서는 그날 하루의 주제에 맞춰 “여러분에게 은은하게 이롱였던 것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초대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What is shimmering for you? What is your sense of God’s invitation to you today?” 이 두 질문에 대해서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약 한 시간가량의 소그룹 모임이 마무리되면 7시에 전체 모임 장소로 모두 이동한다. 전체 모임 시에는 마가렛이 그날 하루의 일정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들을 되짚어 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소그룹 안에서 나눴던 나눔 중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다시 나누고 싶은 나눔이 있다면 또 한 번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시간을 통해 순례자들은 다른 순례자들의 다양한 묵상 나눔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Christian community is the place where we keep the flame of hope alive among us and take it seriously so that it can grow and become stronger in us. ― Henri Nouwen


공식적인 하루 일정의 마지막인 7시 30분 저녁식사 시간은 순례자들이 기다리고 기대하는 시간 중에 하나였다. 수녀님들이 준비해 주신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과 깔끔한 화이트와인이 순례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던 탓이리라. 매일은 아니었지만 식사 후에 순례자들 중에 누군가에 의해 즉석 이벤트가 종종 마련되곤 했었다. 은퇴한 파이프 오르가니스트 수는 어느 날 아시시 거리의 포스터를 통해 무료 클래식 공연정보를 발견하고 관심 있는 순례자들이 함께 클래식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모임을 조직했었다. 기타를 잘 치는 잭은 수녀원 리셉션룸에서 11일 순례 여정 중 총 세 번이나 기타 콘서트를 열어 수녀님들과 순례자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참여한 순례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던 텍사스에서 온 제니는 비가 왔던 날들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젤라토를 먹으러 같이 밤마실을 나갈 친구들을 모았었다.


[참고] 공동체를 위해 '시인'으로 섬겨준 존이 어느 날 아침 기도시간에 순례자들에게 읊어준 시는 다음과 같다. 이 시의 감동과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어 이 자리에 영문 그대로 공유한다.


Human Suffering

Plunge My Soul to Surrender,

Enter Divine Joy.


Solitude, Silence

Magnetically Pulled Down

Towards Ocean Floor.


Deep, Dark, Blue, Abyss,

Stillness and Serenity,

Speak Simplicity.


Truth Transcends Logic,

Rising from Deep Darkness,

Christ's Love Conquers Death!


My Call?  Keep Dying!

Willingly enter Darkness,

Show It Light of Love.


Deep Inward Journey

Breathes Spirit to Climb Mountains.

Stand Firm, Soul Ablaze!


On Peak Under Clouds,

Site Path of Graceful Prey Birds,

See Through Eyes of God.


Human Suffering

Plunge My Soul to Surrender,

Enter Divine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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