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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와 세상을 만나는 여행, 순례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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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The Rests Oct 22. 2023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필요한 준비들

아시시 순례 에세이: ②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

순례 여정이 시작되기 전 순례를 기획한 해당 단체에서는 순례 참여자들로 하여금 몇 가지를 준비시켰는데, 그중에 하나가 순례와 관련해서 참고하면 좋을 도서, 영화, 음악 리스트를 순례자들 모두에게 이메일로 알려주어 순례자들이 각자 알아서 아시시에 대해서, 성 프란체스코와 클라라에 대해 학습할 시간을 준 것이다. 나의 경우 급하게 순례에 합류하게 되어 알려준 해당 자료들을 차분하게 살펴보고 순례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긴 여행시간에 들을 요량으로 음악만큼은 iTunes에서 찾아 핸드폰에 다운로드 받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틈틈이 들을 수가 있었다.

또 다른 준비는 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을 다른 순례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짧은 자기소개 문구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순례를 기획한 단체는 이 내용을 모아 3페이지의 참여자 소개 문서로 만들어 모두에게 전달해 주었는데, 이 문서를 통해 참여자들은 순례를 이끄는 스태프는 어떤 사람들인지, 다른 참여자들은 누구이며,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기대하며 순례에 참여하고, 또 어디서 오는지 정도의 간단한 정보는 숙지할 수 있게 도왔다. 순례에 참여한 사람들은 영적 지도자이자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던 마가렛과 쥴리, 그리고 19명의 순례자, 이렇게 총 21명이 함께 했다. 한국에서 아시시 순례에 참여한 나를 제외하고 20명 전원이 미국에서 참여하는 미국 분들이었다.

순례자 소개와 더불어 순례 기간 동안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필요들을 어떻게 서로 돌볼 수 있을지, 즉 어떤 영역에서 각자 공동체를 섬길 수 있을지 “Areas of Service to the Community”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예를 들어 행정가(Administrator), 의료봉사자(Almoner), 시인(Bard), 기록자(Chronicler), 이미지로 순례를 조명하는 사람(Illuminator), 부엌일을 돕는 사람(Kitchener), 음악가(Music Maker), 창고관리인(Cellarer) 등과 같은 역할이 그것이었는데, 이는 베네딕도회와 프란치스코회의 공동생활 방식에서 많은 것을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은사를 통해 순례자 모두를 위해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각자 선호하는 역할 세 가지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겨 의사 표현을 하고 그 양식을 제출하면 순례 코디네이터가 이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순례자 전원에게 적합한 역할을 부여해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순례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을 알게되고 각자 맡은 작은 책임을 통해 공동체를 섬길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미지로 순례를 조명하는 사람'을 1순위로 적어 제출했는데 순례 코디네이터가 내 바램대로 공동체를 섬기도록 내 역할을 확정지어 주었다.

이 밖에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의료 관련 서류들과 각서도 꼼꼼하게 챙겼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종식되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시 순례를 재개하는 만큼(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이 순례 여정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참여자들 모두 코로나백신을 맞은 증빙서류에서부터 의료보험 증빙서류와 위급한 상황이 발생 시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의 정보, 의료진 등을 꼼꼼하게 작성해 단체에 제출했어야 했다. 이러한 세세한 준비과정을 거쳐 드디어 4월 19일 오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만나 11일간의 순례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