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안부를 찾아서
자주 인스타그램을 지운다. 인스타그램을 처음 지울 땐, 마음속으로 다소 비장한 다짐을 하곤 했다. '이제 인스타그램을 다시는 하지 않겠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시간은 더 이상 없어. 현생을 살자 제발!' 지금은 귀갓길에 편의점 들르듯 지운다. 언제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게시물을 훑어보곤, 또 그 사이에 올라온 새 게시물을 스크롤하고 또 스크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어떤가. 무지개색의 동그라미는 누르지 않으면 안 될 것 만 같이 생겼다. 결국 눌러보면 날씨 좋다고 말하는 하늘 사진이나 다른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카카오톡 대화방 사진들 뿐이다. 인스타그램은 참 포장을 잘한다. 뜯지 않으면 안 될 선물처럼.
7월은 날씨만큼이나 지독하게 치열했다.'여기에 남고 싶은 이유가 뭐냐'라는 그에 말에 성실하게 답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말한 오기인 것 같다가 진짜 답일 수 있겠다. 한 달이 삭제되는 경험은 30년 인생에서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꾸준히 쓰던 다이어리에도 7월은 없다. 아니 처음부터 얹어진 적이 없다. 매번 일주일 간의 계획을 세웠던 다른 날들과는 달리 계획도 목표도 뿌듯함도 물론, 아무것도 없던 날들의 반복이었으니까. 버틴다는 그 세 글자에 기대어 하루를 채워나가는 게 아닌 지워나갔으니까. 음식을 씹어 넘길 때 목에서 턱 걸린다는 기분을 처음 느껴봤던 날들이니까. 꼬르륵거리는 배를 안고 남아 있는 과자 한 봉지를 먹곤 배고픔을 눌러 삼켰던 날이니까.
그렇게 힘든 사이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내가 참 신기했다. 괴롭힘이 시작됐을 때는 어느 순간에 어쩌면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삶의 의욕이 대단했다. 딱히 뭔가를 크게 이루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렇게 죽어버리는 건 아깝다 생각했다. '덜 살았기 때문에 간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말년이 괜찮은 삶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죽기 아까워졌다. 내가 뭐가 될지 나도 모르는데, 그는 내가 뭐가 될지 아는 듯했다. 그가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저런 놈이 사는 세상에서 내가 살지 못한다는 건 웃긴 일이다. 매번 피해자만 죽음을 생각하는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갑자기 치솟았다.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건 이런 분노 들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인스타그램은 하루 두 번씩 꾸준히 접속했다. 날이 덥다거나 구름이 이쁘다 식의 별 근심 없는 글자가, 사랑하는 이들과 하루를 가득 채우며 보내는 사진들이 지질한 감정을 생산해냈다. 일부러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떤 게시물에도 좋아요를 잘 누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행복을 좋아해 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니 너는 애초에. '나는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다들 행복해 보이네. 나만 이렇게 힘들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끊어낼려해도 끊어내기 힘들었다. 내 머리는 이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초에 몇십 개씩 생산해냈지만, 도통 비우질 않았다. 쓰레기들이 질서 없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녀 어지럼증을 유발했고, 만성 두통에 시달렸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내 머릿속 쓰레기를 버리고 비우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쓰레기를 비울 최소한의 힘도 없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쓰레기들을 생산해내는 공급처를 끊어버리는 게 그런 방법이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인스타그램을 지우지 못했던 건 딱 두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IT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업계 트렌드를 알아야지.' 하는 마음, 친구들은 무얼 하면서 사는지 알고 싶은 마음. 속한 회사가 없으니 트렌드와 조금 멀어져 보는 건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가 좀 걸리긴 했다.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나로선 친구들의 소식을 힐끔힐끔 보는 인스타그램이 좋긴 했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비겁한 마음이다. 카카오톡으로 몇 초만에 안부를 직접 물을 수도 있는데, 흔쾌히 또 몇 초만에 답장을 보내줄 친구들도 있는데. 전화를 하면 신호음 몇 번가지 않아 받아줄 친구들이 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 부재중 전화가 남아도 하루 안에 다시 전화를 해 줄 그들이 있는데. 늘 그 자리에 앉아서 그들이 안부를 물어주길 기다리기만 했지 정작 나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 무심함에 내 곁을 떠난 이들도 있을 텐데. 고작 인스타그램 몇 개의 게시물로 그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하는 건 참 무심한 일이지. 나도 마음이 지옥일 때 대부분 행복한 것처럼 포장한 적도 있는걸.
누군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요즘 마음은 어떤지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 알 수 있는 진짜 안부임을 깨닫는다. 내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너무 많은 안부를 전하고 있었지. 굳이 몰라도 되는 이들의 안부를 전달받고 있었지. 나의 그들에게 얼굴을 맞대고 목소리를 포개서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보기로 한다. 아마 그들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알 수 없는 요즘의 마음과 고민을 나에게 쉴 새 없이 떠들 것이다. 나의 그들은 그렇게 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