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표지판을 보다가 한 생각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발목을 잡는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 됐는데도 달리러 나가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죽어간다고 느끼는데 쓰진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상태가 되는 건 늘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왕 할 거 잘하고 싶은데..', '아.. 나보다 잘난 사람은 너무 많아. 고작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잖아'하는 마음이 늘 행동을 막는다. 그놈의 잘하고 싶은 마음. 그것 때문에. 이런 생각은 아무도 몰라준다. 일단 뭐라도 해야지, 내놔야지 내가 죽인지 밥 인지도 알게 된다.
어쩐지 그날은 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달간 백신을 핑계로 뛰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 마음이 갑자기 샘솟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밖으로 나가 발을 내디디니 몸도 한껏 그 낯섦을 느낀다. 종아리가 뻐근하고, 숨이 빠르게 차오른다. 뛰다 보니 또 그놈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슬슬 올라오더니, 발바꿈이 조금 더 빨라진다. 한 달간 쉰 몸 상태는 고려대상에 없다. 목에서 피맛이 금세 느껴진다. 후하 후하. 순식간에 마스크 안의 숨이 차오르고, 침도 약간 흐른다.(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아니.. 멈추지 말고'라는 마음과 이미 한계를 맞이한 몸의 사투에서 너무나 쉽게 몸이 이긴다. 생각은 이리저리 경로가 많지만 몸은 딱 두 가지 경로밖에 없다. 하나 한다. 둘 하지 않는다. 단순한 몸을 생각이 이기는 일은 많지 않다.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는 입력값이 이미 출력됐다. 생각은 이미 많이 늦었다. 그렇다. 달리지 않고 있다는 걸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중이다. 별안간 러닝 벨트, 무릎보호대로 러닝 무장을 하곤 걷는다.
호흡이 괜찮아지니 또 뛰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올라온다. 달리기와 함께 재생했던 나이키 런 어플의 박나래 님 음성이 들린다. "여러분 잘 뛰고 계시죠? 저는 진짜 뛰고 있어요!" 이 말이 양심을 찔렀다. (아니요. 달리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랩니다만..? 그렇지만 양심에 찔려서 조금 뛰어는 볼게요.) 스리슬쩍 뜀박질을 하려고 왼쪽 발을 슬쩍 공중에 띄운다. 그러다 발견한 천천히 표지판. 이상하게도 그 천천히라는 단어 옆에 꾸준히라는 단어가 불쑥 보인다. "맞아, 천천히 달리면 오래 달릴 수 있지. 잘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접어두고 그냥 천천히." 스스로 그 말을 되뇌면서 그렇게 한참을 뛰다 보니 "여러분 이제 5초 남았어요!" 하는 음성이 절묘하게 들린다.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다. 목요일의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뀰(김규림)님을 보면 그렇다. 자신의 짧은 생각을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생각노트님을 보면 그렇다. 분명 그들은 잘하는 사람도 맞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꾸준함'때문이었다. 잘하는데도 꾸준하기까지 하는 그들은 빛이 났으니까. 그 빛남을 탐내면서도 고작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빈털터리로 지내고 있는 나. 요리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양파를 한 번도 썰어보지 않는다면..? 양파는 썰었다 해도 일정하게 잘라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곤 다시는 양파를 썰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아무런 요리도 내놓지 못하는 요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면 아마 그 남은 반은 꾸준함이다.
천천히 표지판에서 인생의 힌트를 얻는다. 천천히가 꾸준함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 그 꾸준함이 결국 잘함의 가능성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부터 천천히, 근데 꾸준히를 곁들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잘하고 싶은 마음은 외면하고 꾸준히 해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러면 무엇이든 되어있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