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내가 안쓰러워서라도 한 번은 찾아오겠지?
행복은 운 좋은 누군가에게 우연히 찾아오는 그런 것이라고 믿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이는 자주 행복해 보였고, 나는 방에서 혼자 우는 날이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행복이라는 건 정말 나쁘지. 어떤 사람한테는 자주 찾아가곤 나한테는 각박하게 일 년에 몇 번 아니 한 번쯤 찾아오나. 불행과 불안은 그렇게 오지 말래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놓고는.' 하며 불평했다.
이제는 안다. 행복이 우연히 찾아오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는 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누군가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주 애쓰고 있다는 거. 그 누군가도 어떤 날에는 방 안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별로 행복하지 않을 때 자주 SNS에 행복한 사람인 양 전시했다. '나는 아주 행복해. 그리고 이런 시간이 자주 있어.' 쉴 새 없이 행복한 사람 코스프레를 했다. 대부분 행복한 날들이 자주 지속됐을 땐, SNS를 찾지 않았다. 행복의 순간이 지속됐기 때문에 그걸 조각내서 자랑하긴 힘들었다. 누군가가 내 행복을 인정해준다고 해서 배로 행복한 것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니었다.
이 단순한 진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사는 게 다소 간단해졌다. 신기하게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 때도 이렇게 생각했다. '이 분도 직장 내 괴롭힘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지금 제일 불행하겠지? 아니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 이 분도 자기만의 힘듦을 들고 출근하는 중이겠지. 행복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의 레이스는 각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레이스는 아주 꼬불꼬불해 보이지만 단거리일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의 레이스는 직선이지만 아주 장거리일 수도 있다. 우리의 레이스가 다르다는 건 누군가가 앞서고 뒤쳐졌다는 걸 따질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레이스가 똑같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만 따져볼 수 있는 이야기다. 나는 나의 레이스에서. 너는 너의 레이스에서. 우리는 각자의 레이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날에는 나는 쓰레기 같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을 때 아래 3가지 진실을 소리 내서(부끄러우면 마음속으로) 읽어본다. 나는 오늘도 이 진실을 읽어야 했다.
1. 누구나 자신만의 힘듦을 가지고 있다. 아주 멀쩡해 보여도 그렇다.
2. 눈물 한 방울 없는 그 사람도 어느 날에는 자기 방구석에서 눈물을 훔친다.
3.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부단히 행복해지려고 애써야 행복해진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나만 지독하게 불행하네.'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을 수 있겠다. 어쩌면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전시된 행복을 보며 나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자주 그랬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냐고 하면 지금도 자주 그렇다. 그래도 일어난다. 씻는다. 씻을 힘이 없다면 모자라도 쓰고 나간다. 걷는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지나친다. '그래 저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어.' 그렇게 여러 번 되뇌면서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애쓴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행복도 내가 안쓰러워서라도 한 번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