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민정 Oct 25. 2021

기다려주자. 성급하지 말자. 나를 기다려주자.

조금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몰라.

 요즘은 이직을 하기 위해서 마음과 몸을 대부분 그곳에 쏟고 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효율이 나지 않는다. 물론 대단한 집중력이 없는 사람이라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언제쯤은 집중의 신이 잠시 찾아온다. 그 신을 어느 정도로 붙잡아두냐는 자신의 능력이지만. 그 신조차도 방문을 하지 않아 대부분 앉아서 멍하니 보낸다. 아무렇게나 보낸 시간이 많았던 탓일까. 아무렇게나 놓인 사람 같네. 회사생활을 진득하게 해 본 적이 없는 탓일까. 한 없이 가벼운 사람 같네.


 원래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본다. 낯가리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학생 기자가 하고 싶어 지원서를 들고 낯선 동아리방에 혼자 갔던 날도 있었지. 기사를 쓰면서 밤을 새우면서도 어쩌면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들떴고, 기뻤지. 난방조차 되지 않은 스튜디오에 대충 자리를 펴고 담요를 덮고 동기들과 잠을 청할 던 그날도 아직 생생히 기억나네. 또 광고가 하고 싶어 광고홍보학과를 덜컥 복수 전공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합광고동아리를 들어가 여러 공모전을 기웃거리며 밤을 새우기를 반복했지. 분명히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무엇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으나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내 기사를 통해 누군가도 더 좋은 세상이 되길 희망하길. 내 광고로 누군가도 이 전에 없던 편리함을 알 수 있길.


 회사원이 되고 나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은 무슨. '누구라도 나한테 어떤 영향도 주지 마'라는 마음을 품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에 그가 나에게 '임원처럼 일한다'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부터였던가. 또 어느 날인가 우리 팀에 있어줘서 고맙다며, 같이 오래 일해보자는 상사가 몇 달 뒤, 내 단점이라면서 여러 말을 내뱉으며 다른 팀으로 이동해달라는 말을 했을 때였던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어이없게도 깨달아 버린 그 날들.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없는. 빛도 들지 않는 저 컴컴한 곳에 혼자 앉아 마음을 잃은 내가 앉아있지. 이제는 그곳에서 나와야 해. 너만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어. 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이 있는 사람이니까. 오늘은 숨차게 달리고 싶은 날이야.


 "대부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잘 기다려줘요. 근데 스스로를 기다리는 걸 힘들어하죠."라는 러닝 코치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타이밍 좋게 흘러나온다. '고작 스스로를 몇 달 정도도 기다려줄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한다. 조급하게 달리려는 발걸음을 조금씩 늦춘다. 힘겹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든다. 기다려주자. 성급하지 말자. 나를 기다려주자. 마지막 5초를 달린다.

이전 02화 쓰레기 같을 때, 세 가지 진실을 생각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