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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정 Oct 21. 2021

구급차를 보면 짧은 기도를 해.

내일은 이쁜 달을 띄워주세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더라. 자기는 구급차를 보면 짧게 기도를 한대. "저 구급차에 있는 누군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아픈 사람을 데리러 가는 거라면 그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주세요"같은 기도를.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히더라. 그 사람이 멋지게 보였어. 그래서 그날 이후로 구급차를 보면 짧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어.


 혼자 걷기만 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날들이 있었어. 30년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어. 나는 다른 사람 눈치를 필요 이상으로 보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울고 싶을 때도 울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어. 근데 그날은 마음속 깊숙한 곳이 울렁거리더니 말릴 새도 없이 눈물이 나더라고.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었어. 눈 바로 밑까지 마스크를 올리곤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그냥 걸었어. 걷지라도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걸으면 남의 눈치를 살피다 눈물을 그칠 거라고 생각했어. 


그때 구급차가 큰 소리를 내면서 여러 대가 지나가는 거야. 이제까지 구급차를 보면서 많은 기도를 했으니 그날도 어김없이 기도를 했지. 가장 긴 기도를 했던 거 같아. 죽음과 삶을 오고 가는 그 작은 공간에서 애쓰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어. 나도 그날은 죽음과 삶 가운데 있는 기분이었거든. 


 그곳에 있는 누군가가 삶의 미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쉽게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며칠이라도, 아니 몇 시간이라도, 몇 분이라도 조금의 여유를 주세요. 그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작별할 시간이라도 허락해주세요.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그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혹시나 삶이 죽음보다 힘든 사람이라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지막은 삶이 자신에게 잔인하지 않았다고. 마지막은 자신을 위한 길을 내어주었다고. 조금은 편안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래도 그가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삶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고작 내일 아침에 떡볶이를 먹고 싶다던가, 따끈하게 갓 구운 붕어빵 하나 먹고 싶다던가. 그런 마음이 티끌이라도 남아있다면 내일을 허락해주세요.


 사람들이 고통스럽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도 사는 게 낫다고 느낄 수 있도록, 내일은 이쁜 달을 띄워주세요. 염치없지만 저도 내일은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삶은 나에게 아직까지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그 감각을 느끼게 해 주세요. 오늘 느끼는 이 울렁거림이 내일은 조금은 잔잔해지도록 해주세요. 그냥 다들 살아가게 해 주세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데려가지 마세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의 충분한 시간을 모두에게 허락해주세요.


아주 충분히 기도를 했고, 나는 울면서 걸었어. 만 걸음 이상을 걸었는데도, 여전히 마음은 울렁거리더라고. 그다음 날은 걷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울렁거렸어. 침대에서 벗어날 수는 없더라. 베개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울었어. 왜 우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어. 기도는 그렇게 흘러갔구나 생각했어. 그래 기도는 기도일 뿐이지. 들어줄지는 내 몫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우니까 어느 날은 또 걷고 싶어 졌어. 울지도 않았어. 내 기도가 이뤄진 걸까. 


나는 괜찮아졌는데, 그들도 그럴까. 

그냥 달을 보면서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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