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서 호랑이 굴로 다이빙하기

by 알룰로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내가 좋아하는 속담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어도

정신 하나만 차리면 이겨낼 수 있다는

비장하면서도 희망찬 메시지가 좋다.


호랑이 굴에 빠졌을 때의 해결책은 단 하나일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얼른 그 굴을 빠져나가는 것.


무서운 호랑이를 피해 굴 밖으로

쏙 빠져나오고 나면, 죽다 살아난 그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 기억 덕분에 앞으로 어떤 고난과 맞닥뜨려도


"에이, 나 호랑이도 피했던 사람인데. 이것쯤이야!"


하며 여유롭게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잡아먹으려

무섭게 으르렁대던 호랑이는

역설적이게도 내 담력을 키워주는

고마운 트레이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더 단단해지기 위해 가끔은 안락한 집을 두고

호랑이 굴 입구로 제 발로 걸어가기도 한다.


정신 차려서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다이빙하기.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이

한없이 부족할 걸 알면서도

제 발로 호랑이 굴로 다이빙해버리기.


그것이 요즘 나의 도전 방식이다.


최근에 호랑이 굴로 다이빙을 한 종목은 ‘운전’이었다.


내게 운전이란 거의 십여 년의 과제였다.

많은 장롱면허자들이 그렇겠지만

스무 살 때 운전면허를 받은 후

한 번도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운전의 필요성을 느낀 건

결혼 이후인 삼십 대 초반이었다.

그때 한 번 운전학원에서

노란색 차로 도로연수를 받았다가

다시 장롱면허로 복귀했다.


아이를 낳고 어느덧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

운전 잘하는 멋진 여성이자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도로연수를 받았다.


그런데 도로연수를 받고 나서도

혼자서 운전을 시작할 엄두는

좀처럼 나지를 않았다.


나 자신이 가장 답답했다.

누군가의 코칭 없이 혼자서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한다는

상상만으로 손에 땀이 찼다.


그래도 이제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집념으로 운전대를 놓지는 않았다.

가끔 평일에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서

길을 봐주면 동네를 운전해 보는 정도로

소소하게 연습을 조금씩 했다.


영원히 조수석에 누군가가

함께 해주지 않으면

혼자 운전은 영영 못할 것만 같았다.


혼자 운전대를 잡고 도로로 나가는 것은

내게 가장 무서운 호랑이 굴로

혼자 곧장 다이빙하는 것이었다.


어두컴컴하고 깊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호랑이 굴이었다.

얼마나 크고 사나운 호랑이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

나의 가장 두려운 호랑이 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무섭던 호랑이 굴 속으로

갑작스러운 다이빙을 시도했다.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 길을 봐주고

나는 벌벌 떨며 운전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목표 장소였던 집 근처 백화점을

한 번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

내 입에서 갑자기 이런 소리가 나왔다.


“이젠 나 혼자 한번 해볼게. 집 앞에 세워줄 테니 내려!”


무슨 용기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냥 그날 햇살이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정말 그랬다.


혼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의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다이빙한 것이다.


정말 괜찮겠냐고 여러 번 되묻던 남편은

집에 가서도 핸드폰으로 아이폰 찾기 기능으로

내 위치를 계속 주시하며 걱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나는 남편이 차에서 내리고

차 안에 혼자가 되고 나자

갑자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났다.


이쯤 되면 나, 호랑이 굴로 제대로 다이빙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을 더 바짝 차리자고 다짐했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두 눈에도 힘을 꽉 주었다.


원래는 혼잣말을 잘하는 편이 아닌데도

‘사람 없어. 초록불, 빨간불. 차선변경!’

이런저런 혼잣말을 되뇌며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늘 조수석에 누군가를 태우고

훈수를 받으며 운전했던 똑같은 길을

스스로 운전해서 가는 동안,

살면서 가장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동안 치른 수많은 시험,

취업하기까지 봤던 수많은 면접 등

그 어떤 순간들보다도

오롯이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 스스로 신호를 보고 주시하고

혼자 판단하고 차선을 바꾸며

도로에서 나를 내가 이끌어가야 하는 순간.


나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도전적인 호랑이 굴이었던 운전.


갑작스럽게 다이빙을 했더니

어찌어찌 혼자서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항상 운전연수 장소였던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까지 성공했다.


얼떨떨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기뻤다.

남편은 물론이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곧장 걸었다.


“엄마, 나 드디어 혼자 운전 첫 성공했어!“


나이 사십을 바라보고 있는 딸이

첫 홀로 운전 성공을 자랑하며

어린아이처럼 환호성을 지르자

엄마도 소녀처럼 함께 소리 지르며

온 마음으로 기뻐해줬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이뤘을,

게다가 너무 쉽기도 했을

운전이라는 호랑이 굴에

나는 이렇게 늦게서야 다이빙한 것이다.


남들에겐 너무 쉽고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호랑이 굴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 신고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이 위대한 생존을 기념해야만 했다.


곧장 백화점 지하 일층 식품관으로 올라가

딸기가 듬뿍 올려진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를 샀다.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맛본 케이크는 정말 달콤했다.


그렇게 나는 내 첫 다이빙을 기념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유롭게 어디든

스스로 차를 끌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저 정신 하나만 차리고

호랑이 굴로 다이빙했던 그날 덕분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말로 정확한 속담이다.


이제는 또 어떤 호랑이 굴에 다이빙해 볼까.


나는 또 새로운 다이빙을 하려 한다.

다이빙을 할수록 점점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져서 더 찬란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테니까.


그 다이빙이 얼마나 어렵고 두렵든

정신 하나만 차리면 호랑이 굴을 정복하고

의기양양하게 빠져나오게 될 테니까.


그리고 다이빙의 첫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또 딸기가 듬뿍 올라간 작은 조각케이크의

기쁨을 달콤하게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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