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보는 샴페인은 안 터져요

by 알룰로스

우리 집에는 샴페인 한 병이 있다.

그 샴페인은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며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우리 집에서 살고 있다.


그 샴페인은 비싸거나 좋은 샴페인도 아니다.

몇 년 전 큰맘 먹고 갔던 좋은 식당에서

운 좋게 선물로 받았던 저렴이 샴페인이다.


샴페인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그냥 봤을 때 모양새가 예뻤다.

진한 초록빛의 유리알 광택의 샴페인 병은

와인과 다르게 아랫부분이 더 널찍하고 동그랗다가

위로 올라가는 곡선이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병 입구를 구겨지듯 둘러싼 황금색 금박지도

어딘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비싸고 좋은 샴페인도 아니었지만

그냥 샴페인 병이 예뻐 보이고 멋져 보여서였는지,

아니면 공짜로 받아온 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거실 입구 쪽 장식장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샴페인을 보며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우리 진짜 좋은 일 생기면 바로 따서 축하하자!”


그 후로 몇 년이 지났고,

샴페인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좋은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일들은 꽤나 많았다.

좋은 일에 대한 기준이 낮은 편인 데다가,

없던 일도 좋은 일로 포장하기를

좋아하는 내 덕에 우리 부부는 가끔

소소한 방구석 축하 파티를 하곤 한다.

보통은 화이트 와인을 그 파티에 곁들이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샴페인은 딸 수가 없더라.


왜 그런 건지 스스로 궁금해져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혹시 내게 ‘자린고비’ 같은 성향이 생긴 걸까?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 두고 바라보며 눈요기만 하듯,

샴페인을 바라만 보고

따서 마시지는 못하는 그런 걸까.

자린고비의 대상이라기에는

그다지 비싼 것도, 귀한 것도 아닌데.


그냥 생각난 김에 돌아오는 주말에

따서 마셔버려야겠다

생각이 드는 찰나에 이런 생각이 뒤따른다.


아, 샴페인은 어느 순간 행운의 상징이 되어있었구나!


그동안 좋은 와인은 바로 마셔버리면서도

저렴이 공짜 샴페인은 따지도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느덧 이 샴페인은 나만의 ‘행운 토템’이 된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따서 축하하자는 말을 뱉은 순간,

샴페인에는 새로운 라벨이 붙었다.

바로 행운 토템 라벨.


그러니까 우리가 샴페인을 데려온 그 년도부터

행운 토템 라벨이 붙은 채로

쭉 우리 집에서 숙성 중이었던 것이다.


작은 물건 하나에도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만의 행운적 해석이랄까.


이 샴페인을 집에 계속 두면 행운이 계속되리라는

무의식적인 의미부여를 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겨도

쉬이 그 샴페인을 가볍게 딸 수가 없었나 보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좋은 일이 생긴다면

샴페인을 딸까 말까,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 같다.


그러나 그 고민의 끝은 항상 똑같지 않을까 싶다.


F1 레이싱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선수가

샴페인을 펑 터뜨리고 흔드는 시원한 퍼포먼스 대신,

나는 한 구석에 조용히 샴페인을 그대로 놓아두고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것 같다.


굳이 펑 터뜨리지 않아도

샴페인 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바라만 보아도 얼마든지 축하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천장에 매달아 두는 조기랑

우리 집 샴페인이랑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샴페인의 입구에 붙은 금박지를 떼어내고

코르크 마개를 열어 펑 터뜨리고

샴페인잔을 부딪히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탄산 버블이 보글보글 예쁘게 끊임없이 올라오는

샴페인잔을 바라보며

샴페인 멍을 때리는 순간을 상상한다.


좋은 일이 생겨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상상만으로도

우리 집에 행운이 가득해지는 것 같다.


당신의 행운 토템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처럼 의미 부여를 좋아한다면

얼떨결에 이미 행운 토템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길가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매끄럽고 예쁜 돌에게도 의미를 지어준다면

최고의 행운 토템이 될지 모른다.


이미 상상 속에서는 열 번도 넘게

터뜨렸을 샴페인이지만

아직 한 번도 터뜨리지 않은

우리 집 샴페인처럼 말이다.


바라만 보는 샴페인은 터지지 않는다.


터지지 않고 몇 년째 잠자코 그대로인 샴페인을

바라보면서 상상 속의 축하를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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