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계획 카페에 들어섰다.
매년 이맘때쯤 꼭 마셔줘야 하는
시즌 한정 커피 메뉴가 있어서다.
“‘계획 시럽 라떼‘ 한잔이요.
아, 디카페인으로요.”
커피 주문을 하고 카페를 둘러본다.
연말이나 새해쯤 꼭 방문하는 계획 카페는
항상 흰 눈이 쌓인 풍경처럼
새하얗고 조금은 서늘한 온도에
오가는 손님 한 명 없이 고요하다.
마치 ‘나’ 이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곧 내가 시킨 디카페인 계획 시럽 라떼가 나왔다.
새하얀 머그잔에 가득 담긴 라떼 한잔을 들고
가장 마음에 드는 창가의 일인석 자리에 앉았다.
호로록 따뜻한 라떼 한 모금을 마시니
서늘한 공기에 긴장되었던 손과 몸이 사르륵 녹는다.
올해는 디카페인으로 시킨 내 계획 라떼.
디카페인이어도 커피 맛은
일반 커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추가금을 약간 더 내고 시켰지만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벌써 흐뭇했다.
올해의 계획 라떼, 시작이 참 좋아.
작년에 마셨던 계획 시럽 라떼에는
아무래도 카페인이 너무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커다란 계획을 세워야
그의 절반이라도 이룬다는,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다소 가학적일지도 모르는 신념 아래에
나를 일 년 내내 몰아세웠던 것 같았다.
이루지도 못할 계획을 잔뜩 세워놓고
왜 이것밖에 못하는지
아니, 이것조차 못하는지
나를 책망하던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았다.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억지로 나를 각성시키려고
들이붓고는 했던 카페인 가득했던 날들.
올해에는 나를 조금 안아주고 싶어서
나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어서
카페인 없이 부드럽게 계획 라떼를 마신다.
물론, 소소한 하루에서 달콤하게
기쁜 순간들을 꼬박 찾아낼 계획으로
시럽 몇 스푼도 들어간 계획 라떼다.
이렇게 비장한 내 올해의 시즌 한정 메뉴,
디카페인 계획 시럽 라떼를
천천히 맛보기 시작한다.
먼저, 다이어리를 새로 샀다.
좋아하는 라벤더 색깔로 샀다.
나와 한해를 함께 보내야 할
소중한 다이어리는
무조건 좋아하는 색깔로 골라 사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 튀는 색이어도 상관없다.
다이어리 표지에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도 괜찮다.
올해부터 우리는 남의 시선보다
좀 더 ’나‘의 눈치를 보기로 했으니까.
다이어리에 표기된 일 년 달력을
눈으로 쭉 훑는다.
안녕! 나와 함께 하게 될 나의 일 년.
예의상 눈으로 인사를 해준다.
그래야 다가올 하루하루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팔 벌려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할 테니.
빈칸 메모장에 글을 써 내려갈 준비를 한다.
이때의 준비에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솔직한 마음.
올해에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목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도 되고
중구난방식으로 이러쿵저러쿵
아무렇게나 끄적여도 된다.
그냥 정말로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정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루기 위해
일별로, 주별로, 월별로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 세세하게 계획표를 작성해 본다.
……농담이었다.
올해의 계획 라떼에는 카페인도 없고
시럽도 넣었는걸.
더 이상 이루지 못할 목표와 계획들로
나를 꾸짖고 다치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저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정했다면
다이어리를 그냥 바로 덮어버리자.
그리고 계획카페의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라떼를 마저 호로록 마시자.
창밖에 펼쳐질 새해의 잔잔한 날들이
빠르지 않게
날카롭지 않게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나를 기다린다.
당신을 기다린다.
우리 올해는 꼭 스스로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펴주기로 하자.
하루하루 달달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나’를 응원해 보기로 하자.
너무 애쓰지 않고도
되고 싶은 내가 되어있을지 모른다.
당신의 올해 ‘계획 라떼’는 어떤 맛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