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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간지 Apr 08. 2022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 『구토』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1895222



그런데 존재가 갑자기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대낮처럼 뚜렷했다.
존재는 갑자기 베일을 벗었다. (······)
아니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나무뿌리와 공원의 철책,
벤치, 듬성듬성한 잔디밭 등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사물의 다양성이나 사물의 개별성은 가상에 지나지 않았으며,
표면을 바르는 칠에 불과했다.
그 칠이 녹아버리고, 괴물처럼 물컹거리고 무질서한 덩어리, 노골적이며 무섭고 추잡한 알몸의 덩어리만 남아 있었다."

 "구토" 중 



오늘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과 그의 대표작 '구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르트르를 빼놓고는 프랑스 문학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고 당대 프랑스 사회를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으로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그의 실존주의 철학은 세계대전의 참화와 인류적 이성의 붕괴로 허무감이 만연했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의 대표작 "구토"는 실존주의의 선언이라 불리는 책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과 그의 저서 '구토'를 처음 접한 건 대학 전공수업에서였다. 당시 목표했던 대학에 가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를 '실패자'라 생각했다. 나보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도 느꼈다. 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왔는데 다시 힘들게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을 보면서 노력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도대체 인생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허무감에 젖어 아무 의욕 없이 무기력하게 대학 생활을 했다.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실패하는 게 두려워 노력을 회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수업에서의 사르트르 강의는 시험을 위한 암기 대상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먼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인간과 사물의 차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많이 들어 본 말이다. 근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존과 본질의 뜻을 알아야 한다. 실존은 존재 그 자체이다. 본질은 존재의 목적이나 의미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의자는 앉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의자는 존재가 형성되기 전 만들어지는 목적, 즉 본질이 먼저 주어지고 이에 따라 존재가 형성된다. 그래서 의자와 같은 사물들은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존재의 목적이나 의미 혹은 가치인 본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삶에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는 것을 부조리라고 한다. 정해진 본질이 없기에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존재다. 쉽게 말해서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학생인 나', '자식인 나', '남성인 나', '공부 잘하는 나', '돈 많이 버는 나'도 있다는 말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인간에게 정해진 삶의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이해했다.


2. 현재는 과거의 무수한 선택들의 결과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마지막에는 우리의 동의 없이 죽는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삶의 우연성 자체가 부조리라 말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태어난 인간을 사르트르는 '세상 앞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이를 피투성(被投性)이라고한다.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게는 정해진 본질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사물과 달리 자유를 갖는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사르트르의 명언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가 나온다. 인간은 늘 자기 자신에게서 탈주하여(탈자아) 새로운 자신으로 변해가는 존재이다. 즉 인간은 자기를 뛰어넘어 미래로 자기 자신을 던진다. 사르트르는 이를 투기(投企)라고 불렀다. 과거의 나의 끊임없는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3.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런데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삶의 의미와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이 부담스러운 책임을 인간은 혼자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라는 저주를 선고받았다"라고 표현했다.


4. 인간은 자기기만에 사로 집혀 있다.

이 막중한 책임감을 견디지 못한 인간은 자신에게 자유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의미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이 자신의 의미나 가치인 양 연기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사물로서 존재하려는 것이다. 즉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자기를 기만하며 삶을 사는 것이다.


5. 인간 본질은 맨 뒤에 결정된다.

우리는 이런 자기기만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에게 선고된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의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말은 우리의 선택에도 정답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하지만 선택에 정답이 없기에 우리 개개인의 모든 선택은 곧 정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정답으로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실존하는 인간은 자신만의 본질을 만들어 가며 살면 되는 것이다.


6. 앙가주망 - 사회 및 시대와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하지만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 선택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은 사회의 선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개인이 만들어나가는 가치가 우리 사회의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앙가주망"을 통한 지식인들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구속받으며 그 안에서 삶을 선택하는 방식을 앙가주망(engagemaent)이라 불렀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하는 삶을 강조한 사르트르는 글을 통해 작가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며 앙가주망을 실천했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르트르의 논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 다섯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실존은 존재 그 자체, 본질은 존재의 의미, 목적 혹은 가치

2. 인간은 본질을 갖지 않는 실존적 존재이다.

3. 본질을 갖지 않기에 인간은 자유를 갖는다.

4. 자유를 갖는 인간은 선택을 통해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본질을 만들어간다.

5. 그리고 개인이 만드는 본질은 사회를 위한 본질이 되어야 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피투성으로 태어나 끊임없이 투기하는 존재다.'

쉽게 말해서 아무 의미 없는 인생에서 자유를 갖고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자신만의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창조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주체성"이다.


소설 "구토"는 일기 형식으로 주인공 로캉텡이 실존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 로캉탱은 프랑스의 부빌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는 롤르봉 공작이라는 역사상 인물의 전기를 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주운 조약돌을 보는 순간 구토감을 느낀다. 그에게 구토감은 실존이 드러나는 체험이다. 이후 그는 사물을 볼 때마다 구토감을 계속해서 경험한다. 로캉탱은 지금 여기에 무언가 있다는 것 자체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으며, 우연히 여기 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소설의 끝에 로캉텡은 롤르봉 공작의 전기를 쓰기를 단념하고, 부빌을 떠나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강의 내내 사르트르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논증력에 감탄하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흐릿하게나마 답의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 의미가 없는 삶에서 나만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내가 허무함을 느꼈던 이유는 사회가 정해준 가치에만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좋은 학벌, 높은 사회적 지위, 높은 경제적 지위 같은 것들.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가 잘못된 건 아니다. 사회적 가치들은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사회의 요구에도 어느 정도 부합하며 살 필요가 있다. 다만, 삶의 주체로서 나의 가치와 사회의 가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불안함에 나 자신을 잃을 때마다 허무감이나 무기력에 빠진다. 그럼 다시 정신을 바로잡고 진짜 나로 돌아온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큰 행복이다. 공부는 내가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일을 통해 성취의 보람을 얻을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일을 하여 번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햇빛을 쐬며 여유를 즐기는 삶도 행복하다. 이런 것들이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나만의 삶의 의미, 가치 혹은 이유이다.


삶의 의미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사소하더라도 자신에게 의미가 있으면 된다. 삶의 의미가 너무 거창하면 우리의 삶이 의미 자체에만 매몰되어 허무감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고민해도 삶의 의미를 도저히 못 찾겠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반드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그래야만 하는 건 없으니까. 그냥 살아 있음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현재에 집중하며 매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면 된다. 사르트르의 생각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각자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의미보다 삶에 대한 주체적 태도이다.


철학은 인간에게 자유를 준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위대한 철학가들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함이 아니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넓은 사유의 폭, 성찰의 기회 그리고 비판적 사고능력을 얻을 수 있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각자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만들어 가면 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구조주의 철학의 등장으로 구시대의 철학으로 취급받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모든 결정론을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극단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남한의 북침이라고 주장했던 것도 우리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의 다소 극단적인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기 힘들 기도하다.


그럼에도 이념을 떠나 그의 책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는 데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허무감이 만연했던 당시 유럽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크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르트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구토"를 읽어 보길 권한다. 혹시 "구토"에 대한 보다 많은 해석을 원하시는 분들이나 "구토"가 읽기 어려우신 분들은 장근상 교수님의 "사르트르의 구토 읽기"라는 책을 추천드린다. 내가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의 저서이다. 나도 이 책을 통해 "구토"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지금 실존적 존재로서 여러분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이 창조하고 있는 여러분만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졌네요.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 글을 끝까지 읽으셨다는 건 그래도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해요. 그냥 보다 많은 사람들과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같이 나누고 그 지식이 누군가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오늘의 노래는 BTS의 "소우주(Mikrokosmos)"예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할 때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수험생이라는 상황이 내가 이 사회에서 무의미한 존재가 된 느낌이잖아요. 또 공부를 하다 보면 노력을 하면서도 불안하고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허무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빛을 내는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소우주예요. 그런 우리 각자가 어둠으로 가득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라는 빛을 발하는 실존적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이 곡을 만들고 부른 BTS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을 거고요. 그게 BTS의 성공 비결이라 생각해요. 밤 하늘의 별을 보며 혹은 도시의 야경을 보며 이 노래를 들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좋은 밤 되시고 다들 2022년 새해도 파이팅!


https://youtu.be/lyWnBBKxc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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