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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 <Neverwhere>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by 불이삭금

원제: Neverwhere

저자: Neil Gaiman (닐 게이먼)

한국어판 제목: 네버웨어

특이사항: 원래 BBC 텔레비전 시리즈였는데, 그걸 소설로 쓴 것이다. 판타지 모험 소설.

영어소설 난이도:


한국어판 <네버웨어> 표지. 출처: Daum 책


모험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도 통하지 않는 미지의 나라로 가야 하는 걸까.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1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배낭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모험의 빌미가 된다. 바로 이 책에서처럼.


이 책의 주인공 리처드는 런던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그에게는 저녁에 돌아갈 수 있는 작은 아파트가 있고, 튼실한 직장이 있으며,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다. 매일매일은 그저 똑같이 돌아간다. 때로 지루할 순 있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건 불평할 수 없는 행복한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리처드는 길모퉁이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치료해주고 쉴 수 있게 해준다. (웬일인지 그녀는 병원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지만, 이번엔 리처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마치 투명 인간인 듯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전철을 타려 해도 매표원이 자기를 보지 못해 표를 살 수가 없었고, 도로에 뛰어들어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택시가 멈춰 서지 않았다. 신용카드조차 먹통이 돼버렸다. 겨우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는 자기 책상이 치워져 있고, 약혼녀마저 자기를 못 알아본다. 급기야는 부동산에서 빈 집이라며 자기 아파트까지 세놓으려 한다. 내가 버젓이 이 집에 살고 있는데!!!


리처드는 이 모든 이상한 일의 시작이 자기가 길거리에서 도와줬던 그녀였다는 걸 깨닫고,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을 나서는 리처드. 아는 것이라고는 '도어(Door)'라는 그녀의 이름뿐이다. 사라져가는 도어의 흔적을 찾아 떠난 리처드는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런던의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위험한 악당과 괴물, 천사 등이 살고 있는 지하 세계로.


원서 'Neverwhere' 표지. 출처: Goodreads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평범한 현대인의 모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모험 이야기는 특정한 시대와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주로 어린이들의 이야기이거나. 그런데 이건 어른의 모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마치 나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하세계를 다루는 만큼 런던의 지하철과 지명이 많이 나오는데, 그 지하철 역 이름에 맞춰서 신기한 장소들이 나타나고 모험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얼스코트(Earl's Court, 백작의 법정/중정)'역에는 백작이 있고, '블랙프라이어스(Black friars,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들)'역에서는 수도사를 만날 수 있으며, '엔젤(Angel, 천사)'역에는 실제로 천사가 살고 있다. 마치 서울로 따지자면 잠실역 지하에는 아직도 누에를 기르는 작은 도깨비들이 살고 있다던가, 서빙고역 지하에는 커다란 얼음동굴이 있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고 나니, 어느 글 잘 쓰는 작가가 서울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 모험 소설을 좋아한다면 권하고 싶다.


영어 소설 난이도는'중'이라고 하기에도, '하'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내용은 분명히 재미있고, 영어도 술술 읽히는데, 의외로 어려운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바꿔 말하면 읽다가 종종 튀어나오는 어려운 단어들만 무시하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약간 어려운 단어가 나오더라도 스스로 도전해보고 싶다거나, 이런 종류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영어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저자인 닐 게이먼이 읽어주는 영어 오디오북으로도 들었다. 책을 이미 읽은 뒤 듣는 거였는데도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영국식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는지, 종종 튀어나오는 어려운 단어들을 그새 다 까먹어서였는지. 어쩌면 둘 다 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를 깨 우 는 말 들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처럼

무지에서, 편협한 사고에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말들


1.

Richard had noticed that events were cowards: they didn't occur singly, but instead they would run in packs and leap out at him all at once.

리처드는 사건사고들은 겁쟁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고가 하나씩 일어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모여 다니다가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법이다. 그건 신이 우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건사고'들이 겁쟁이라서 혼자 덤비지 못하고 여럿이 덤비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무릎 꿇을 우리가 아니다. 다 덤벼라! 17대 1로 이겨주마!!


2.

I'm going to go home. Everything is going to be normal again. Boring again. Wonderful again.

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다시 지루해지고, 다시 멋져질 거야.


때론 지루한 일상이 멋진 일상이다. (Sometimes 'boring' is wonderful.)


3.

So the day became one of waiting, which was, he knew, a sin; moments were to be experienced; waiting was a sin against both the time that was still to come and the moments one was currently disregarding.

그렇게 하루를 기다리며 보냈다. 기다림이 죄라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매 순간순간은 경험되어야 한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한테도, 그리고 지금 외면하고 있는 이 시간한테도 죄를 짓는 것이다.


당신도 오늘, 무언가를, 기다렸는가?


*여기에 있는 한글 해석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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