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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ine> 박제됐던 과거가 깨어난다

시간여행과 액션의 만남은 항상 옳다

by 불이삭금

원제: Timeline

저자: Michael Crichton (마이클 크라이튼)

한국어판 제목: 타임라인

특이사항: 2003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어판 <타임라인>. 출처: 김영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접 체험해본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기사의 갑옷을 입어본다 거나, 영화 세트장에 방문해 사진을 찍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영화 세트장이 아니라, 만일 진짜로 과거 시대로 갈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이 책은 중세 유럽에 대해 공부하던 학자와 그를 따르던 세 명의 대학원생들이 우연히 중세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14세기 유적인 옛 성터를 발굴하던 중세 역사학 교수와 대학원생들. 어느 날 교수는 이들의 발굴을 후원해주는 회사에 가느라 미국으로 출장을 갔고, 현장에는 제자들만 남아서 발굴을 계속하게 됐다. 그런데 성터에서 나온 오래된 서류 뭉치에서 교수님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발견된다.


HELP ME 1357


어떻게 된 일일까? 누가 장난이라도 친 것일까? 미국에 간 교수님과는 연락이 안 된다. 발굴터에서 나온 "HELP ME"라고 적힌 글씨는 분명 교수님 필체이지만, 오래된 종이에 오래된 잉크로 적힌 것이었다. 어떻게 현재의 교수님이 1357년의 서류에 몇 백 년이나 묵은 오래된 잉크로 Help me라고 쓸 수 있었던 걸까?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발굴을 후원해주던 회사 사장이 실은 시간 여행에 미쳐있었고, 그가 양자 물리학을 이용해서 시간 여행 기계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수님은 그 기계를 통해 1357년으로 떠났지만 뭔가가 잘못돼서 돌아오지 못하고, 이들에게 글씨로 SOS를 보냈던 것이었다. 이제 이들은 14세기 과거에 갇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교수님을 구하러 가기로 한다. 중세 유럽을 공부하고 좋아하던 이들 대학원생들은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시간 여행을 준비하게 된다. 중세 유럽어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고, 당시의 문화나 풍습에 대해서도 모두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그럴까?


스타워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다스 베이더와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황홀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광선검을 든 다스 베이더와 사활을 건 결투를 하게 된다면 제 아무리 스타워즈 덕후라 하더라도 오금이 저리지 않을까? 이들도 곧 자신들이 도착한 곳이 책으로만 공부하던 것과는 다른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들의 모험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원서 Timeline의 표지. 출처: Goodreads


저자는 <쥐라기 공원>, <스피어>, <콩고> 등의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탄탄한 스토리와 흥미진진한 전개가 특징이어서 그의 책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책 <타임라인>도 역시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영화보다 책을 더 추천하고 싶다.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다. 처음 도입부 부분은 전체 이야기의 큰 그림을 그리느라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학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발굴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이야기가 막힘없이 흘러간다. 내용도 정말 그럴 듯해서, 과학적 사실과 픽션을 잘 버무려내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썼는지는 책 뒤에 실려있는 참고도서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거의 90여 권이나 되는데 대부분이 중세시기의 의복, 음식, 전쟁 등에 대한 책들과 양자역학 이론에 관한 과학서적들이었다.


영어로 읽기에 아주 쉬운 책은 아니었다. 문체가 어렵진 않았는데 배경이 중세시대인지라 창(lance), 마상 창시합(joust), 갑옷(a coat of mail), 흉벽(battlement) 등 낯선 단어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만 열심히 사전을 찾으면 뒷부분은 좀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은 재미있지만 512페이지로 책이 조금 두꺼운 편이다. 영어로 읽으려면 처음 영어 소설을 시작하는 분들보다는 책의 긴 호흡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분들이 읽으시는 게 좋을 듯 싶다.


* 본문에 ‘시간 여행'이라고 쓰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일은 시간 여행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말고도 무한대로 많은 우주가 있다. 그걸 과학용어로 ‘다중우주(multiverse)’라고 한다. 이렇게 우주가 많다 보니 어떤 우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와 영 딴판인 곳도 있고, 어떤 우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약간만 다를 뿐 굉장히 흡사한 곳도 있다. 그리고 그 우주들 중에는 우리의 과거 모습을 하고 있는 우주도 있다. 이 책에서는 '다중우주' 이론을 차용해서, 주인공들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14세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우주'로 떠나는 거라고 설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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