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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Oct 10. 2020

순례에 대한 혹은 삶에 대한 이야기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by 레이첼 조이스

하려던 건 아닌데, 왠지 해야 할 것 같은


한글 번역판 표지. 글의 주요 소재인 엽서와 할아버지를 표현했다. 출처) 교보문고


이제는 은퇴를 해서 할 일도 없는 무료한 할아버지 해롤드 프라이. 아내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것 뿐. 그러던 어느날 아주 오래전 동료가 많이 아프며,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건강 잘 돌보라고 편지나 부쳐줘야겠구먼.


그 동료가 머물고 있다는 요양원 앞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기 위해 길을 나선 해롤드. 그런데 걷다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해롤드는 우체통을 지나친다. 



우체국에 가서 부치면 되지.


해롤드는 우체국도 지나친다.


내가. 직접. 가서. 전해줄까.



영어 원서 표지. 순례길을 떠났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닳은 신발이 보인다. 그런데 왜 운동화가 아닐까? 그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출처) 교보문고


그렇게 그는 예정에 없던 길을 떠나게 된다.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있지만 괜찮다. 핸드폰도 집에 놔두고 왔지만 괜찮다. 평생 운동이라곤 안했지만 괜찮다. 그가 사는 곳에서 동료가 있는 요양원까지는 10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지만 괜찮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걸어서 가면 그녀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해롤드의 순례길 이야기.

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든 생각.


역시 사람은 걸어야 하는 걸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떠날 수 있을까? 갑자기 시작할 수 있을까?

노년에 이르러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젊은 날엔 깨닫지를 못하니, 참 아이러니.

후회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나도 늙어간다는 뜻일까?

(매번 하는 다짐이지만) 후회없이 살아가보자. 지금부터라도.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라.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줄


1.

He and Queenie must have driven this way countless times, and yet he had no memory of the scenery. He must have been so caught up in the day’s agenda, and arriving punctually at their destination, that the land beyond the car had been no more than a wash of one green, and a back drop of one hill. Life was very different when you walked through it. (p. 40) 

그와 퀴니는 이 길을 수도 없이 운전해서 지나갔을 거다. 하지만 그는 이 풍경을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날 해야할 일 생각에 몰두하느라, 그리고 제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데 신경쓰느라 그저 창밖의 풍경은 언덕 배경에 초록색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찬찬히 걸어가다 보면 인생은 참으로 다르다.


 2.

It was not a life, if lived without love. (p. 147)

사랑 없이 살게 된다면, 그건 삶이 아니다.


3.

He had learned that it was the smallness of people that filled him with wonder and tenderness, and the loneliness of that too. The world was made up of people putting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and a life might appear ordinary simply because the person living it had been doing so for a long time. Harold could no longer pass a stranger without acknowledging the truth that everyone was the same, and also unique; and that this was the dilemma of being human. (p. 158) 

그는 자신이 경이롭게, 그리고 민감하게 느끼는 것들은 사람들의 사소함과 외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세상은 그저 한발 한발 자신의 삶을 내딛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그런 방식으로 오래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이 평범해보일 뿐. 해롤드는 이제 자신을 지나치는 모든 낯선 이들이 다 똑같으면서도 독특한 - 인간이라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4.

It was easier to give up than keep moving. (p. 270)

계속 가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더 쉬웠다.


맞아. 포기하는 게 더 쉽지.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5.

Harold was right: it was too much to bear. To have come all this way and discovered what it was you wanted, only to know that you must lose it again.



“One day at a time,” she murmured. (p. 311)

해롤드 말이 맞았다. 그것은 감당하기에 너무 괴로웠다. 이 먼 길을 와서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발견했는데, 그걸 다시 잃어야한다는 걸 알게 되다니.

...

"한번에 하루씩만."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래. 감당이 안 될 때는 한번에 하루씩만 살아보자.





저자: 레이첼 조이스 (Rachel Joyce)

제목: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원서 제목: The Unlikely Pilgrimage of Harold Fry

옮긴이: 정영목

출판사: 민음사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민음사 출판사 것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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