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Jan 09. 2021

시간의 주름을 지나 미지의 세계로

시간의 주름 by 매들렌 렝글

포기했다가 다시 읽은 책


제목은 워낙 많이 들어봤다. 영화로도 나왔다. 상도 받았다. 그래서 읽어볼까 시도했다가 말 그대로 "이건 뭥미~?"하는 반응과 함께 책을 덮었었다. 도대체 이런 책이 왜 인기가 있으며, 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왜 5권까지 시리즈물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차면서.


그러다가 지난번에 독후감을 쓴 <어느 날 미란다에게 생긴 일>을 읽고는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미란다에게 생긴 일>에서는 <시간의 주름>이 꽤 중요한 모티브로 나온다. 주인공 미란다는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다른 주인공과 이 책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책 속에서 언급된 부분이 궁금해서라도 <시간의 주름>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언급된 부분은 <시간의 주름> 결말이었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 했다.



영어판 표지. 내용이 짐작 가지 않는 신비한 느낌을 준다.

 출처: Goodreads


 


시간의 주름? 시간이 늙었나?


일단 제목부터가 신기하다. <시간의 주름>이라니. 시간이 늙었다는 뜻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주름'은 옷감이나 천의 주름과 같다. 옷의 어깨부터 소매 끝까지 40cm인 옷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그 옷에 주름이 져 있다면? 어깨부터 소매 끝까지의 길이가 30cm가 될 수도 있고, (옷이 완전히 구겨져 있는 상황이라면) 10cm가 될 수도 있다. 만일 시간이 이렇게 구겨져서 주름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이 책은 시공간이 휘어져 있는 것을 '주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주름' 덕분에 책 속 인물들은 다른 곳으로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이동하거나,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시간의 주름을 이용한 시공간 여행의 비밀을 밝혀낸 물리학자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다.  아빠가 왜 사라진 건지, 언제쯤 되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슬퍼하던 그의 아들과 딸. 그 앞에 신비한 존재들인 Mrs. Whatsit, Mrs. Who, Mrs. Which가 나타난다. 이들은 주인공 소녀의 아빠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그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직접 이들을 그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사실 요새는 이런 시공간 여행에 대한 책이나 영화가 많기 때문에 특별히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신비한 모험 이야기들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출간 연도가 1962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로는 획기적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처음에 읽기 힘들었던 이유


이번에 나름 재미있게 읽고 난 후, 왜 예전에는 이 책을 읽다가 포기했을까를 떠올려봤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라진 물리학자의 아들이었다. 이제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아이인데 머리가 굉장히 비상하고 미지의 존재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로 그려진다. 너무나 영악하고 똑똑한 어린아이 캐릭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벽이 생긴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미지의 존재들인 Mrs. Whatsit, Mrs. Which, Mrs. Who 였다. 이들은 신도 아니고, 마녀도 아니다.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들의 등장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됐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두 가지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미천한 영어실력으로 원서를 읽다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짜증이 났을 수도 있... 

어쨌든 결론은, 다시 시도해서 좋았던 책이었다. 좀 오래된 책이라 출간 당시의 신선함과 충격은 많이 누그러졌겠지만, 아이들은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 사족 >>


난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도 들었는데, 읽는 성우가 주인공 소녀의 대사를 너무 징징거리면서 읽어서 듣기 힘들었다.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하는 건지! 하마터면 이번에도 완독을 못할 뻔했다.



한국어 번역판 표지. 시간의 '주름'을 형상화한 듯? 어쨌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잘 살린 표지.

출처: 교보문고




2018년에 제작된 영화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오프라 윈프리, 리즈 위더스푼 등 유명인이 나오지만, 주인공인 소녀가 아니라 신비한 존재인 Mrs. Whatsit, Mrs. Which 역할을 맡아서인지 그 배우들 모습이 포스터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줄


1.

Life, with its rules, its obligations, and its freedoms, is like a sonnet: You're given the form, but you have to write the sonnet yourself.  

규칙도 있고, 의무도 있고, 자유도 있고. 인생은 마치 소네트와 같아. 형식은 주어지지만 그 내용은 네가 직접 써야 해.


'소네트'는 시의 한 종류인데, 마치 우리나라 옛시조처럼 몇 줄이어야 하고, 운율은 어때야 하고, 이런 형식이 정형화되어 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정해진 규칙과 의무가 있지만, 어쨌건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은 스스로 써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

We can't take any credit for out talents. It's how we use them that counts. 

능력이 있다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 능력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거죠.


모두들 특출 난 재능을 바란다. 하지만 능력이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3.

Believing takes practice. 

믿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맞는 말인 거 같다. 특히 나 자신을 믿는 일.





제목: 시간의 주름

원서 제목: Wrinkle in Time

저자: 매들렌 렝글 (Madeleine L'engle)

옮긴이: 최순희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특이사항: 훌륭한 아동도서에 수여하는 뉴베리상 수상작. 1962년 출간. 2018년에 영화로 제작되었음. 리즈 위더스푼(Mrs. Whatsit)과 오프라 윈프리(Mrs. Which)도 출연함.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문학과 지성사 출판사 것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리, 재미, 감동이 골고루 섞인 뉴베리상 수상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