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이삭금 Apr 10. 2021

당신을 웃기고 울릴, 그녀의 솔직함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by 제니 로슨

제대로, 미쳤다


영어책 제목은 <Furiously Happy>. 우리말로 옮기자면 "치열하게 행복한" 정도가 될까? 거기에 묘하게 웃고 있는 너구리 표지. 나는 이 책을 오해하고 시작했다. 사실 별다른 정보 없이,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너무 많이 웃었고 기분이 좋아졌다기에, 그저 유머집인 줄 알고 골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많이 웃었고, 정말로 읽고 난 후 기분이 좋아졌다. 소재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사람들의 걱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놀랄 만큼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면서, 그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치열하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소재가 왜 '걱정을 불러일으킬 만'하냐고? 그건 책의 소재가 바로 '병'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


저자인 제니 로슨은 미쳤다. 제대로 미쳤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좀 이상하지만, 그녀에게 정식으로 내려진 병명만 해도 여러 개다.


극도의 불안 장애를 동반한 고기능 우울증

중증의 임상 우울증

충동조절 장애에서 비롯된 경증의 자해증

회피성 인격장애

때로 나타나는 비현실감 장애 혹은 이인성 장애 (자기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끼는 장애.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함)

류머티즘 관절염과 자가면역증

경증의 강박장애

발모벽 (자기 머리카락을 뽑는 충동조절 장애의 한 종류)



꽤 심각해 보이는 병명을 달고 살지만 그녀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무척 치열하게. 이렇게 써놓고 보면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부단한 노력이 담긴 우울한 글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낄낄거리게 웃긴 책이다.




출처: 교보문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제목과 표지. 원작의 느낌과 좀 달라진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표지인 것 같다.






미친(?) 그녀의 웃긴(?) 이야기


그녀는 자신의 정신병을 숨기지 않는다. 모든 걸 다 털어놓는다. 자신의 이상한 증세도, 그로 인한 에피소드도. 그런데 그 문체가 너무나 유쾌하고 발랄해서, 읽는 동안 계속 웃음이 나고 행복해진다. (물론 때로 슬프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병증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그녀. 자해나 자살 충동이 일 때면 화장실이나 방구석에 숨어 들어서 트위터에 그 사실을 솔직하게 적는다. 그러면 그곳이 몇 시건, 세상 어디에 있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곧 그 트위터에 답장을 하고 전화를 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몇 시간이고. 그녀가 이 험한 파도를 넘고 다시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가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됐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여러 증상이 있는 그녀에게는 출판사 사람을 만나는 것도, 타주로 출장을 다니는 것도, 출판 기념회에 다니는 것도 모두 큰 도전이다. 하지만 집안에, 방안에 숨지 않고 당당히 밖으로 나온다. 모두에게 손을 내민다. 손만 잡아주면 이 증상을 버티고 또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고. 그녀는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위해서도 이 모든 걸 이겨내려고 애쓴다.


우울할 수도 있는 일상을 너무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책을 읽으며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번역본 제목처럼 "그래.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하게 된다.




출처: Goodreads

처음엔 CG인 줄 알았던 표지. 알고 보니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박제 너구리다. 저 미친 듯이 행복해하는 표정과 포즈로 박제를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해서 제작한 것. 저 박제 너구리를 만든 과정을 읽고 나면 표지만 봐도 웃음이 난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And when we see celebrities who fall victim to depression’s lies we think to ourselves, “How in the world could they have killed themselves? They had everything.” But they didn’t. They didn’t have a cure for an illness that convinced them they were better off dead. (p. 58)

우리는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살할 수가 있지? 저들은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아니다. 그들은 다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는 게 더 낫다고 믿게 만드는 병'에 대한 치료방법을 가지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곁을 떠나간 연예인들이 떠올라 슬펐다.

우울증을 단순히 슬퍼하거나 의욕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죽는 게 더 낫다고 믿게 만드는 병"이라고 정의 내린 것도 놀라웠다. 임상 우울증은 이런 거였구나.



2.

I have learned that every person in the world is on the spectrum of mental illness. (p. 235)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어느 정도는 정신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맞는 말인 거 같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3.

Be happy in front of people who hate you. That way they know they haven’t gotten to you. Plus, it pisses them off like crazy. (pp. 249-250)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행복해하라. 그러면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당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행복해하는 당신을 보면 그들은 화가 나서 미치려고 할 것이다.



4.

manifestation of imposter syndrome, a very real problem I struggle with. Basically, it’s when you’re convinced that any success you have is due to luck and that at any moment everyone will realize that you are a tremendous loser and that you aren’t as cool as they thought you were. (p. 279)

나는 사기꾼 신드롬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뭔가에 대해 성공을 하게 되면, 그건 순전히 운 때문인 것이고,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머저리인지를, 내가 그들 생각만큼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라는 믿음이다.


나는 성공도 못한 주제에, 사기꾼 신드롬을 가지고 있다. 이런...



5.

I told him that sometimes I felt like his life would be easier without me. He paused a moment in thought and then said, “It might be easier. But it wouldn’t be better.” (p. 318)

나는 남편에게, 내가 없었더라면 그의 삶이 훨씬 편했을 거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 삶은 훨씬 편했겠지. 하지만 더 나은 삶은 아니었을 거야."


그녀의 모든 병증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편. 그녀의 모든 엉뚱한 돌발행동들을 이해해주고, 그녀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고(예를 들면 비행기를 못 타는 그녀를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해준다던가..), 때로 그녀와 격렬하게 다투기는 하지만 항상 옆을 지켜주는 남편.

그녀가 없었다면, 삶은 더 편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과연 더 좋은 삶이었을까?



6.

I used to feel a lot of guilt about having depression but then I realized that’s a lot like feeling guilty for having brown hair. (p. 318)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죄책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젠 깨달았다. 우울증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건 마치 내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 것에 죄책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7.

Because quitting might be easier, but it wouldn’t be better. (p. 322)

왜냐하면 포기하는 게 더 쉬울진 몰라도, 더 나은 건 아니니까.




제목: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원서 제목: Furiously Happy

저자: 제니 로슨 (Jenny Lawson)

옮긴이: 이주혜 옮김

출판사: 김영사

특징: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온 한글 해석은 이주혜 님의 번역이 아니라 제가 원서를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한글 출판본과는 번역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