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by J. R. R. 톨킨
때는 바야흐로 20년 전.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는 바로 거기에 폭 빠져버렸었다. <반지의 제왕 1편: 반지원정대>였다. ‘호빗’이니, ‘샤이어’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난무했지만, 나는 그 환상적이고 신비한 세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원서를 집어 들었지만, 내 겸손한 영어 실력에 바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번역본을 손에 넣었고, 책도 영화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작품은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자신의 상상에 못 미치는 화면 때문에 실망하게 된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볼 때면 길고 지루한 설명 때문에 책에 흥미를 잃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아니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던 1편에 이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본 2편과 3편까지. 영화도 책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고, 각각의 장점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줬다.
그 반지의 제왕을, 20년 만에 영어 원서로 다시 읽게 됐다.
출처: 교보문고
얼핏 보면 추상화 같지만, 사우론의 눈, 반지들, 반지에 새겨진 고대 요정의 글귀 등을 다 담고 있는 표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로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제법 괜찮다고 느껴지는 표지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암흑의 제왕인 사우론이 부활하는 걸 막기 위해, 막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절대 반지를 없애려고 중간계의 여러 부족이 힘을 합치게 된다. 절대 반지는 아무리 강한 도끼로도 깨뜨릴 수 없고, 아무리 센 불로도 녹일 수 없다. 그 반지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반지가 처음 만들어졌던 모르도르의 화산 속 불구덩이에 던져 넣는 것뿐.
무서워서 멀리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이 반지를 없애기 위해 이들은 적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호빗 족 4명, 인간 2명, 마법사 1명, 요정 1명, 난쟁이 1명. 이렇게 9명으로 구성된 반지원정대를 만들어서.
출처: 교보문고
나는 한글판 표지와 같은(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같은) 표지인 원서로 읽었는데, 여기에는 다른 표지의 책으로 가지고 와봤다.
<반지의 제왕>은 명실공히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다. 책을 읽어보면 왜 이 책을 고전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방대한 서사와 온갖 종족들의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중간계’라는 거대한 세상을 창조해낸 톨킨에게 경외감마저 들 정도다. 가끔 설명이 지루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재독을 해도 좋을 만큼의 재미와 감동도 들어 있다.
이 책이 판타지 계의 고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겠지만, 나는 굳이 ‘판타지’로 카테고리를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책이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책을 관통하는 철학이 바로 지금 현재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지도 65년이 지났고, 책이 다루고 있는 중간계도 현대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있다.
책에서 주요 소재로 나오는 ‘절대 반지’만 해도 그렇다. 반지의 주인에게 엄청난 힘과 권력을 줄 수 있는 반지. 이 반지를 없애기 위해 반지원정대까지 만들었지만, 개중에는 이 반지를 없애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지의 힘이 아까우니까. 이 반지를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우리가 좋은 쪽으로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이 반지를 없애야 하는 거지? 하지만 그 반지를 만든 이가 암흑의 제왕 사우론이기에, 종국에는 반지의 힘에 잡아먹혀 버릴 거라는 게 중론이었고, 그렇게 반지는 없애는 걸로 결론이 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현대의 논란들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크나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과학적 진보들 말이다. 원자력 발전이나 유전자 조작, AI 등과 같은. 어떤 이들은 잘못 선을 넘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더 이상의 연구는 멈춰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 규칙과 법규를 마련해서 일어날 위험을 미리 차단하고, 연구의 결과들을 인류를 위해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원자력은 공해 없는 안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됐을 때의 피해상황은 우리가 가늠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유전자 조작으로 아직 수정란 상태에서 치료가 어려운 유전병을 없앨 수도 있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슈퍼 히어로를 능가하는 인간을 만들게 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AI는 생활의 편리함을 도와주지만, 그 AI가 모든 직업군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 목적은 뭐가 될 것인가?
물론 이 중에 어느 것이 ‘절대 반지’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과학 기술이나 진보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없애야 할 ‘절대 반지’인지, 인류의 새 희망이 될 횃불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니,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과감히 그 절대 반지를 없앨 수 있을까? 아니면 어설픈 법률을 만들어내며 그 반지의 힘을 어떻게 해서라도 이용하려고 할까?
출처: 다음 영화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쓰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진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깊이 있게 살펴보지 않더라도 반지의 제왕은 꽤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책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 가능하다면 책을 읽으면서 중간계의 지도를 꼭 펼쳐놓고 보시길. 책을 2배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
1.
One Ring to rule them all, One Ring to find them, One Ring to bring them all and in the darkness bind them. (p. 58)
모두를 다스릴 하나의 반지, 모두를 찾아낼 하나의 반지. 모두를 모아서 어둠 속에서 묶어버릴 단 하나의 반지.
2.
왜 하필 사우론은 지금 부활하려는 걸까. 왜 하필 이 절대 반지가 내 손에 들어온 걸까. 왜 하필 그걸 막는 중책을 내가 맡아야 하는 걸까.
‘I wish it need not have happened in my time,’ said Frodo. ‘So do I,’ said Gandalf, ‘and so do all who live to see such times. But that is not for them to decide. All we have to decide is what to do with the time that is given us. (p. 59)
“그런 일이 내가 살아 있을 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프로도가 말했다.
“나도 그렇단다.” 간달프가 말했다. “그런 일을 살아서 보게 된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이지.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아니냐 하는 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내느냐 하는 거야.”
살아가는 동안, 하필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필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필 고약한 전염병이 돌아서 1년이 넘게 마스크를 쓰며 집콕 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하필 지구 온난화가 악화되어 기상 이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건 우리가 결정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뿐.
3.
It was not Gollum, Frodo, but the Ring itself that decided things. The Ring left him.’ (pp. 65-66).
그건 골룸이 정한 게 아니란다, 프로도. 절대 반지가 스스로 결정한 거야. 반지가 골룸을 떠난 거지.
4.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p. 189)
금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빛나는 건 아니란다. 방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길을 잃은 건 아니란다.
5.
The Lord of the Ring is not Frodo, but the master of the Dark Tower of Mordor, whose power is again stretching out over the world. (p. 252)
반지의 제왕은 프로도가 아니야. 다시금 세상으로 세력을 뻗치고 있는 모르도르의 어둠의 탑에 있는 주인이 반지의 제왕이지.
반지의 제왕을 참 재미있게 봐놓고도, 여전히 반지의 제왕이 누군지 몰랐다니. 반지의 제왕은 프로도도, 아라곤도 아닌, 사우론이었다.
6.
Books ought to have good endings. (p. 302)
책은 결말이 좋아야 해.
완전 동의하는 바다.
특징: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