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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이삭금 Feb 01. 2024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

<생명, 알면 사랑하게 되지요>

제목: 생명, 알면 사랑하게 되지요

지은이: 최재천 (글), 권순영 (그림)

출판사: 더큰아이



출처: 교보문고 초등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최재천 선생님이 들려주는 자연 사랑 이야기


초등 아이 용 책이지만 원래 아이들 책도 종종 읽어 왔고, 또 내가 좋아하는 동물행동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최재천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얼른 읽어 보게 됐다. 148쪽으로 책도 얇아서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도 그렇지만, 책 내용도 '-이다'체가 아니라 '-해요'체로 적혀 있다. 마치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같은 느낌이다. 최재천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도 구독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의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참 좋았다. 정말로 선생님이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는 느낌이랄까.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책의 내용이다. 읽다 보면 선생님이 자연과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가 있다. 그 사랑의 마음이 종이 너머로도 전해져서, 누구라도 나무나 자연 혹은 생명체를 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든다.


또한 글솜씨가 뛰어나 수필을 읽듯 술술 읽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아쉬웠던 점


내가 느꼈던 아쉬움은 아마도 이 책이 초등학생 용 어린이 도서를 어른인 내가 읽었기 때문이리라.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점을 풀어 보자면.


1) 사진이 없다.

그림이 아닌 사진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필요한 동물의 사진을 모두 구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고, 아이들이 보는 책이니 징그러운 벌레의 경우는 사진보다 그림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최재천 선생님이 정글에서 겪은 일화는 사진이 없을 테니 당연히 그림으로 대체해야 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진이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특히 돌고래 제돌이를 풀어 준 걸 기념하기 위해 제주 김녕항에 세워졌다는 기념비는 실물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그림으로 대체되어 있어서 서운했다.


최재천 선생님이 직접 벌레 연구를 하기 위해 코스타리카 라셀바, 파나마, 바로콜로라도 섬 등 열대 우림을 찾은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나라들에 대한 지도가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 표지

책에는 최재천 선생님이 어린 시절 TV 드라마 '타잔'을 보며 정글을 꿈꿨던 내용이 나온다. 그렇게 상상만 해 오던 정글을 직접 마주했을 때, 얼마나 벅찬 느낌이었을까. 표지의 그림은 그 정글에서 마치 타잔처럼 신나게 움직이는 젊은 날의 최재천 선생님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한데, 젊은 모습으로 그려 놓으니 그림의 인물이 최재천 선생님이라는 것도 모르겠고. (처음 봤을 때 내 반응은 '이 젊은이는 누군고?' 였으니.) 그렇다고 그 그림이 유달리 '생명을 사랑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출판사에서 나름 고심해서 만든 표지이겠으나, 표지만 봐서는 구독자 66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이자 저명한 생물학자로 이름이 난 최재천 선생님이 저자라는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나도 '최재천 지음'이라는 글을 보고서야 알았으니.


3) 트럼펫나무

책에는 코스타리카의 고산 지대 몬테베르데에서 트럼펫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아즈텍여왕개미들이 나온다. 트럼펫나무는 대나무처럼 줄기 속이 빈 데다 마디가 칸칸이 나뉘어 있어서 세로로 잘라 보면 고층 아파트처럼 생겼고, 그 마디마다 여왕개미들이 살림을 차리고 있다고 한다.


트럼펫나무가 어릴 때는 종이 다른 여왕개미들이 힘을 합쳐서 마디마다 왕국을 차리고 살아가는데, 연구 자료에 따르면 다 자란 트럼펫나무에는 오직 하나의 왕국만 남아 있고 그 왕국은 한 여왕이 통치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최재천 선생님이 나무를 자르다가 개미떼에게 물리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워낙 많이 물리는 바람에 애초에 스무 그루 정도 확인하려던 계획을 접고 다섯 그루로 만족해야 했다는 이야기.


그 부분을 읽고 나니 의문이 생겼다. 그럼 이걸 확인하기 위해 애꿎은 나무 다섯 그루를 베었다는 얘기인가?  (즉, 애초에 스무 그루를 베어낼 계획이었던 건가? 그곳은 나무가 많아서 스무 그루 정도 베어내는 건 아무 문제 없는 건가?) 다 확인한 후에 개미 왕국은 어떻게 됐을까? 갑자기 왕국의 한쪽 벽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는데. 다시 붙여 줬을까? 잘랐다가 붙이면 아무런 불편 없이 다시 살아갈 수 있나? 아니면 다른 집(트럼펫나무)으로 옮겨 줬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내 연구는 다 끝났으니 너희들 알아서 새 보금자리 찾아가라 하고 나 몰라라 한 것일까?


책 속 삽화를 보면 트럼펫나무가 베어져 쓰러져 있고, 그 앞에서 몸에 붙은 개미들을 털어내는 최재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걸 보면 나무를 베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연구였던 거 같은데. 책 내내 동물 사랑, 자연 사랑을 외쳤던 선생님인지라, 연구를 위해 나무를 베고 개미들의 보금자리를 훼손한 이후에 어떻게 다시 복원시켜 줬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






내가 사랑한 문장


1.

순식간에 속옷까지 쫄딱 젖은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쏟아지는 열대의 비를 맞았어요. 안경 위로 빗물이 줄줄 흐르고, 축축한 옷이 몸에 감겼어요. 저 바깥의 인간 세계에서라면 끔찍하게 여겨질 법도 한 상황이지만, 정글에서는 마냥 좋았어요. 그대로 진흙탕에 나뒹굴어도 좋을 것 같았답니다. 열대의 자연에서 비로소 나는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아,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p. 24)


꿈에도 그리던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기뻐했을 모습이 눈에 선히 보여서, 읽으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던 장면.


2.

인간에게만 있다고 여겼던 능력이 다른 동물에게서 발견되는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꿀벌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
언어만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으로 손꼽히고는 했어요. 그런데 동물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제인 구달 박사가 처음 밝혀냈어요.
...
흔히 인간에게만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게 또 있어요. 바로 아름답고 훌륭한 감정이에요. (p. 92~94)


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도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겸손과 모든 생명체에 대한 경이를 깊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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