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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사고 쳤냐? 인생 완전 망쳤군.

실수해도 괜찮아. 내일 당장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야.

by 불이삭금

제목: 슬램

원서 제목: Slam

저자: 닉 혼비 (NickHornby)

특이사항: 코믹 청소년 성장 소설.

원서 소설 난이도:


한국어판 <슬램> 표지 이미지


이 소설은 16살 생일을 앞둔 샘이 주인공이다. (샘의 나이 꼭 기억해두자.) 한동안 샘의 인생에는 좋은 일들만 일어났다. 엄마는 드디어 맘에 안 들었던(샘의 맘에 안 들었던) 남자친구를 차 버렸고, 샘은 스케이트 보드 새 기술을 연마했으며,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줬고, 얼굴이 아주 예쁜 알리시아라는 여자친구도 사귀게 됐다. 그런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한 순간, 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샘은 사귀던 여자친구 알리시아와 헤어지게 된다. 이게 문제였냐고? 아니다. 살다 보면 사귀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그런 거다. 게다가 이 둘은 누가 누구를 차 버린 게 아니고, 그냥 애정이 좀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됐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샘은 어느 날 알리시아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예정일이 3주나 지났는데 생리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알리시아가 단순히 생리불순을 겪고 있는 여고생이었던 걸까? 아니면 샘의 여자친구가 아니, 헤어진 옛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건가? 아, 만약 진짜 임신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엄마에게 말씀드려야 할까?


참고로 샘의 엄마는 32살이다.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려보자. 샘이 몇 살이라고?)


이 책은 청소년의 (특히 성에 대한?) 성장기를 재미나게 쓴 소설이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 십 대 미혼모들에 대한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대개 양극단을 달리는 것 같다. 낙태, 미혼모, 영아 유기 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거나, 젊은 나이에 엄마/아빠가 되어서도 예쁘고,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와는 친구 같은 엄마/아빠가 되는 화려한 일면만 부각하거나.


이 책에서의 샘은 두 가지 극단을 골고루 섞어서 보여준다. 어떤 때는 이 한 번의 실수로 자기 인생이 십 대에 벌써 망가져버렸다고 우울해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이런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샘은 콘크리트로 된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데, 자칫 실수를 하면 바닥에 넘어지거나 쾅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SLAM은 스케이트보드를 탔을 때 실수로 넘어지는 상황과 샘의 인생이 꼬여버린 상황을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주인공 샘이 일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십 대의 성 문제나 임신 문제에 대한 청소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괜히 이 책의 종류를 ‘코믹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쓴 게 아니다. 중간에 판타지처럼 혹은 꿈처럼 살짝 타임워프 설정이 나오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지만, 십 대 아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단어도 쉽고, 내용도 쉬워서 영어로 읽어도 술술 잘 읽힌다. 무엇보다 책이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영어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도전하기에 딱 좋은 것 같다. 그동안 동화책이나 짧은 단편소설로 원서 읽기를 시작했다면 이제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원서 "SLAM"의 표지




나 를 깨 우 는 말 들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처럼

무지에서, 편협한 사고에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말들.


1.

My dad used to say that if you were in a hole you should stop digging. (p. 224)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지. 구덩이 속에 빠졌으면 이제 그만 파라고.


그런데 대개 우리는 구덩이에 빠진 줄도 모르고 계속 자기 무덤을 판다.


2.

I hate time. It never does what you want it to. (p. 288)

난 시간이 싫다. 내가 원하는 건 절대로 해주지 않으니까.


빨리 가랄 때는 늦게 가고, 늦게 가랄 때는 쏜살같이 날아가고, 어서 지나가랄 때는 뭉그적거리고, 멈추랄 때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시간이란 놈.


3.

“Bloody hell,” said Mark. “What a mess.” He was laughing, but Mum wasn’t having it.

“Why is it a mess?”she said.

“She’s been alive for five minutes, and she’s got a nephew who’s older than her, and two half-brothers with different mothers, and a mum who’s a grandmother, and God knows what else.”

“What else?”

“Well. Nothing else. But that’s a lot.”

“It’s just a family, isn’t it?” (p. 290)

“이런 세상에.” 마크가 말했다. “완전 콩가루네.” 마크가 웃었지만 엄마는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이게 왜 콩가루야?” 엄마가 말했다.

“얘는 태어난 지 5분밖에 안 됐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도 있지, 이복 오빠 두 명은 엄마가 제각각이지, 자기 엄마는 벌써 할머니지, 또 뭐가 더 있는지 누가 알겠어.”

“뭐가 더 있는데?”

“어, 더는 없어. 그래도 이것만 해도 엄청나잖아.”

“그건 그냥 가족이잖아. 안 그래?”


같은 상황, 다른 해석. mess인가, family인가.

어떻게 생각하건 당신 마음이다. 뭐라고 부르든 당신 선택이다. 완전 막장에 콩가루 집안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 여기에 있는 한글 해석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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