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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당신에게

내 인생은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권한다

by 불이삭금

한국어판 제목: 구덩이

저자: 루이스 새커 (Louis Sachar)

원서 제목: Holes

특이사항: 뉴베리 수상작. <홀즈>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어 원서 난이도:


한국어판 <구덩이> 표지.


더위로 온 몸에 땀이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이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저 에어컨이 켜진 건물만 찾아다니며 늘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텍사스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메마른 땅바닥을 하루 종일 삽으로 파내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일이다. 이 책은 주인공 스탠리가 바로 그 개고생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덩치만 컸지 속은 여린 중학생 스탠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도둑으로 몰린다. (하지만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남의 집 돼지를 훔치다가 들켜서 저주를 받은 후부터 스탠리 집안은 대대로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판사는 그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Green Lake Camp’라는 청소년 교화센터로 보내게 된다. 가난해서 평생 ‘캠프’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스탠리와 가족들은 이것도 나름 ‘캠프’니까, 라면서 위안을 삼아 본다. 헌데, 막상 도착한 곳은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메말라 버린 드넓은 호수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탠리는 땅에 구덩이를 파야 했다. 그냥 작은 구덩이가 아니라, 깊이도 5피트(대략 1.5m), 사방도 5피트가 되도록 깊게, 넓게 파야 했다. 매일매일, 18개월 동안 말이다.


도대체 이 청소년 교화센터의 소장은 왜 땡볕 속에 땅에 구덩이를 파는 게 아이들의 삐뚤어진 성격을 교화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땅을 꼭 파야만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이곳에서 구덩이를 파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소장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은 그날만큼은 구덩이를 파지 않아도 되고, 그늘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무언가"가 발견된 구덩이 주변을 계속해서 더 파야 한다. 도대체 소장이 찾고 있는 "무언가"는 무엇일까? 소장은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구덩이를 파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자기를 찾으라는 말 밖에.


뜨거운 땡볕, 맛없는 음식, 냄새나는 잠자리, 팔다리가 욱신거리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날마다 날마다 파야하는 구덩이. 남의 집 돼지를 훔치다가 스탠리 집안에 저주를 불러온 100년 전 고조할아버지는 자기가 받은 저주 때문에 스탠리가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알까? 그런데, 그 고조할아버지는 정말 남의 돼지를 훔쳤던 걸까? 세상에 정말 저주라는 게 있을까?


별로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했는데, 읽어보니 굉장히 재미있다. 역시 상을 받은 작품은 뭔가 다르긴 한가 보다. 무더위 속에 하염없이 구덩이를 파게 된 스탠리 이야기와 고조할아버지가 나오는 100년 전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나오는데, 서로의 얼개가 맞아가면서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저자의 말로는 자기 인생이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느끼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가끔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정말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 하고 푸념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언제나 자기만 억울하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불운하고.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타인에게 친절하고, 복을 베풀면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될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이 상황이 싫다며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고, 부모님이나 친구, 혹은 고조할아버지를 탓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사실 "안 되면 조상 탓"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그때 네 할아버지가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라거나 "이게 다 묏자리를 잘못 써서 그런 거야."라는 말도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조상에게로 돌려버리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으니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실마리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현재를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홀즈(Holes)>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평도 좋다. 시나리오 작업도 역시 저자가 직접 했다. 가장 뛰어난 아동도서를 쓴 작가에게 수여하는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어른이 읽어도 너무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은 이름과 별명 외우기가 힘들다는 다. 주인공 스탠리가 갔던 교화센터에서는 모두들 이름을 부르지 않고 별명을 지어 부른다. Squid, Zero, Armpit, Caveman과 같이 말이다.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이름과 캐릭터를 연결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늙어서 그런가. 흑..)


영어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영어 독해 실력이 중급 이상 된다면 영어로 읽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나 를 깨 우 는 말 들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처럼

무지에서, 편협한 사고에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말들.


1.

It was all because of his no-good-dirty-rotten-pig-stealing-great-great-grandfather!

이게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돼지 도둑 고조할아버지 때문이었다!


2.

I'm not stupid. I know everybody thinks I am. I just don't like answering their questions.

난 멍청하지 않아. 모두들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 알아. 난 그저 사람들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제로(Zero)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어른들이 질문하면 꼭 대답을 해야 하는 거지?


3.

"You are here on account of one person. If it wasn't for that person, you wouldn't be here digging holes in the hot sun. You know who that person is?"

"My no-good-dirty-rotton-pig-stealing-great-great-grandfather."

...

"No," said Mr. Pendanski. "That person is you, Stanley. You're the reason you're here. You're responsible for yourself. You messed up your life, and it's up to you to fix it. No one else is going to do it for you."

"네가 여기에 있는 건 한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네가 이 더운 뙤약볕 아래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지 않았겠지. 그 사람이 누군지 아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제 돼지 도둑 고조할아버지요."
...
"아니야." 펜덴스키 씨가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너야, 스탠리.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야. 너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을 져야지. 네가 인생을 망쳐놨으면 그걸 고치는 것도 너한테 달린 거야. 어느 누구도 널 대신해서 해줄 사람은 없어."

누구 때문에 이 교화센터에 오게 됐는지 아냐고 묻자, 스탠리는 주저 없이 고조할아버지를 댔다. 돼지를 훔치다가 들켜서 집안에 저주를 불러온 고조할아버지. 늘 그랬다. 스탠리뿐만 아니라 그 집안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사건 사고들은 다 그 망할 고조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일까? 정말 이 모든 게 고조할아버지 탓일까?


4.

Nothing in life is easy. But that's no reason to give up. You'll be surprised what you can accomplish if you set your mind to it.

삶에서 쉬운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게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지. 네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야.


5.

You may have done some bad things, but that doesn't mean you're a bad kid.

네가 나쁜 짓을 저질렀을 수는 있지만, 그게 네가 나쁜 애라는 뜻은 아니야.


6.

What scared Stanley the most about dying wasn't his actual death. He figured he could handle the pain. It wouldn't be much worse than what he felt now. In fact, maybe at the moment of his death he would be too weak to feel pain. Death would be a relief. What worried him the most was the thought of his parents not knowing what happened to him, not knowing whether he was dead or alive. He hated to imagine what it would be like for his mother and father, day after day, month after month, not knowing, living on false hope. For him, at least, it would be over. For his parents, the pain would never ends.

죽음에 대해서 스탠리가 가장 무서웠던 건 그가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정도 고통은 감내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 보다 뭐 얼마나 더 나쁘겠는가. 사실 그가 죽는 순간에는 몸이 너무 약해져서 고통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죽는다는 건 오히려 안심되는 일일 것이다. 그가 가장 걱정되는 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를 부모님이었다. 하루하루를, 한 달 한 달을, 그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 채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할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죽음이 끝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그 고통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 여기에 있는 한글 해석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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