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다시 '가족'이 되기까지

<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by 불이삭금

예전에 발행했던 독후감을 수정 후 다시 발행합니다.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이 독후감의 영문 버전인 To Become Family Again도 발행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주세요.




한국어판 제목: 러블리 본즈

원서 제목: The Lovely Bones

저자: 앨리스 세볼드 (Alice Sebold)

특이사항: 영화화됐음

영어소설 난이도: 중상


014-2.jpg 한국어판 <러블리 본즈> 표지. 영화화됐다는 걸 강하게 어필하는 띠지가 붙어 있다. -_-;;


아이가 살해됐다. 남은 우린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에서 2백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 겉표지를 넘기면 수많은 매체와 비평가들이 이 책이 얼마나 좋은 가에 대해 써놓은 찬사가 가득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남들이 막 좋다고 하면 “어디 얼마나 좋은가 한번 두고 보자.”하는 심리가 생긴다. 그래서 감동받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 덕분인지 처음에는 별로였다. 이거 계속 읽어야 하는 걸까 잠깐 고민도 했다. 그러다가 훅~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책이 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거기에 나의 작은 찬사도 소심하게 보태 본다.


책의 화자가 이미 죽은 소녀라는 것은 책의 첫머리에 나온다. 수지 새몬. 그녀는 14살의 나이에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다. 이 소설에서 수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앞부분에서 독자에게 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CSI 드라마가 아니었다.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젠 그녀의 가족이 발 벗고 나서서 범인을 찾는데 주력한다. 범인을 찾아다니느라 가족의 울타리는 무너지고, 가족이 있던 자리엔 그저 허허벌판만이 남았다. 그녀는 천국과 지상 사이인 Inbetween(이 곳도 일종의 천국이지만)에 머물면서, 지상에 남은 가족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수지의 죽음으로 인해 와해되고 무너졌던 한 가정이 다시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라는 건 사실 너무 식상한 소감문이지만 이 보다 더 적당한 문장을 찾기가 힘들다.


살인과 같은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대개 사람들은 엽기적인 살인행각과 피해자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범인을 잡아서 감방에 처넣을지(!)를 얘기한다. 그간 보아왔던 CSI와 같은 숱한 형사 드라마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범인을 잡는 데에 골몰해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영화 내내 맴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오래된 미제사건을 통해 범인을 밝히지 못한 범죄에 대해 그렸었다. 그런데 정말로 범인만 잡으면 끝인 걸일까? 범인만 잡으면 사건이 해결되고 case closed 되는 걸까?


범인의 단죄 여부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됐다는 상실감과 충격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바로 피해자의 가족이다.

누가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아내고, 범인을 잡아서 단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범인의 또 다른 후속 범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도 이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무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어느 하나 밝혀지지 못한다면 이들은 결코 그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에겐 범인을 잡는 것이 그 ‘마무리’의 시작은 될 수 있어도 끝은 될 수 없다. 범인을 잡은들, 범인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를 받은들, 아니 사사로이 범인을 잡아서 고문하고 고통스럽게 죽여서 복수를 한들 죽은 피해자가 살아 돌아올 리 없으니까. 범인이 도망을 갔든, 감옥에 갔든, 죽었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됐다’는 상실감과 충격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바로 피해자의 가족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지의 엄마와 아빠, 여동생 린지, 막내 남동생 버클리. 그들이 어떻게 슬퍼하고, 어떻게 견뎌내는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와 잔해들을 치우고 주춧돌을 하나씩 놓아 집을 다시 짓듯이, 가족의 일원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후 다시 일어서는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신선했던 건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수지의 감정도 보여준다는 거였다. 죽은 수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역으로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잃고 자기만 홀로 살아남은 셈이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면서 슬퍼하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없더라도 잘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수지가 자신과 가족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참 좋았다.


책 내용을 떠올리면, 사랑하는 사람을 황망히 잃어버리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닐, 세월호를 비롯한 현실에 있는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떠올라 마음 아팠다.

삶과 죽음, 가족에 대해 깊이 사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어로 읽기에 적절히 어려운 책이다. 아주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척 쉬운 책도 아니다. 독해 실력이 고급 정도 되는 분, 중급이지만 좀 어려운 책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들께 영어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014-3.jpg 영어 원서 The Lovely Bones의 표지.




나 를 깨 우 는 말 들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처럼

무지에서, 편협한 사고에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말들.


1.

Of everyone in the family, it was Lindsey who had to deal with what Holly called the Walking Dead Syndrome – when other people see the dead person and don’t see you.
When people looked at Lindsey, even my father and mother, they saw me. Even Lindsey was not immune. She avoided mirrors. She now took her showers in the dark. (p. 59)

우리 가족 중에 홀리가 말하던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과 싸워야 했던 건 바로 린지였다.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이란 누군가를 봤을 때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린지를 볼 때면,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 조차도, 모두 나를 떠올렸다. 린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린지는 거울을 안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샤워할 때도 어둠 속에서 했다.


언니인 수지가 죽자, 모두들 동생 린지를 볼 때마다 수지를 떠올린다. 린지 자신마저도 그게 괴로워서 거울을 안 보게 됐다.


2.

I wanted to snake up my father’s back, circle his neck, whisper in his ear. But I was already there in his every pore and crevice. (p. 109)

나는 아빠의 등에 착 달라붙고 싶었다. 아빠의 목을 감고, 귀에 속삭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아빠의 모든 모공에, 모든 틈새에.


죽은 수지가 아빠를 내려다보며 하는 생각. 아빠에게 가서 슬퍼하는 아빠를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이미 아빠의 몸과 마음은 온통 수지로 가득 차 있었다.


3.

My father said he wanted to try something out.
“We have to see if your old dad can carry you piggyback style again. Soon you’ll be too big.”
So, awkwardly, in the beautiful isolation of the yard, where if my father fell only a boy and a dog who loved him would see, the two of them worked together to make what they both wanted – this return to father/son normalcy – happen. When Buckley stood on the iron chair – “Now scoot up my back,” my father said, stooping forward, “and grab on to my shoulders,” not knowing if he’d have the strength to lift him up from there – I crossed my fingers hard in heaven and held my breath. (p. 160)

아빠가 뭔가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가 널 다시 업어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좀 더 있으면 네가 너무 커버릴 테니까.”
그래서, 어색하게, 뒤뜰의 아름다운 고독 속에서, 혹시라도 아빠가 넘어지면 그걸 볼 사람은 아빠를 사랑하는 한 소년과 개 밖에 없는 그곳에서, 아빠와 버클리는 둘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평범한 아빠와 아들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일 말이다. 버클리가 철제 의자 위로 올라섰다. “이제 내 등에 올라타.” 아빠는 자신에게 아들을 등에 업을 힘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어깨를 꽉 잡아.” 나는 천국에서 행운을 빌며 숨을 죽였다.


딸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홀로 동분서주, 고군분투하던 아빠는 무릎을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퇴원을 하고 난 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막내아들이 너무 커 보였다. 아빠는,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아빠와 아들 관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무릎이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들을 등에 업어보려 한다. 천국에서 수지도 아빠와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며 숨죽여 행운을 빌어주고 있었다.


4.

Lindsey handed him the drawing.
“I’m going to pick up Buckley,” my mother said.
“Don’t you even want to look at this, Mom?”
“I don’t know what to say. Your grandmother is here. I have shopping to do, a bird to cook. No one seems to realize that we have a family. We have a family, a family and a son, and I’m going.” (p. 184)

린지가 아빠에게 그림을 건넸다.
“난 네 동생 데리러 갈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이게 뭔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 할머니도 와 계시지, 장도 봐야 하지, 닭고기도 요리해야 하지. 여기 가족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아. 여기 가족이 있다고. 가족이랑 아들이 있어. 그러니까, 엄마는 나갈 거야.”


수지의 동생인 린지도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동네 사람 집에 린지가 몰래 숨어 들어가서 단서가 될만한 그림을 훔쳐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도 없이 오래 지속된 범인 찾기에 지친 엄마는 그림 볼 생각을 안 한다.


가족이 있다.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 딸이 죽었어도 여전히 장을 봐야 하고, 밥을 지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남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린 막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부모는 그 가족을 돌봐야 한다. 딸이 죽었어도.


5.

When my father’s car pulled into the drive, I was beginning to wonder if this had been what I’d been waiting for, for my family to come home, not to me anymore but to one another with me gone. (p. 316)

아빠의 차가 집 앞에 들어섰을 때, 난 이게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이 서로서로에게 돌아오는 순간.


* 영어 원서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판에서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 있는 한글 해석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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