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4월
도쿄에 방을 구한 서리하는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술집에 취직해 밤에 일했다.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했다. 지치고 술에 취해 주정하는 사람을 달래서 보내는 일로 하루를 마감했다.
낮에는 세오녀 비단의 자취를 쫓아 서점을 뒤지고 다녔다. 한자가 많아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박춘금, 일본명 나카지마 신이치라는 이름뿐이었다.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기노쿠니야를 비롯해 간다에 있는 고서점가도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큰 서점에는 ‘혐한류’라는 칸이 따로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일본이 조선을 개화시켰다’ ‘한글은 미개한 글이다.’ ‘한국은 일본의 우수한 문명을 베끼고 있다.’ 등 일본을 미화하고 한국을 깔보는 내용이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한국을 미워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점에서는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대학 도서관 등 옛날 기록을 모아둔 곳을 뒤져야 할 것 같았지만 출입할 방법이 없었다. 고심하다 한 이름을 떠올렸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역사가 신영지. 위안부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으로 한국에도 그의 책이 몇 권 번역되었다. 민철에게 부탁해 한국 출판사를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신영지도 신문을 통해 서리하를 알고 있었다. 만나고 싶다고 하자 반기는 목소리로 집으로 오라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신영지를 만난 서리하는 세오녀 비단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움을 청했다.
“세오녀의 비단이 실재한다고요?”
“네. 여기 일본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춘금이라는 친일파가 발견해 일본으로 가지고 건너갔으니까요.”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리하는 그동안 자신이 정리한 노트를 꺼내 보였다. 일월사당, 일월신, 연오랑과 세오녀, 귀비고, 옥함, 세오녀의 비단, 박춘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날이 저물었다.
“밤도 깊었으니 오늘은 자고 가세요.”
“초면에 이렇게 폐를 끼쳐도 될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리는 서리하에게 신영지가 말했다. “혼자 삽니다. 일이 많아 결혼 못했습니다.”
웃는 얼굴에서 깨끗하고 강직한 선비의 기풍이 느껴졌다.
“술을 할 줄 압니까?”
“네. 좋아합니다.” 친밀감을 느낀 서리하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 시인이지요.” 말하며 신영지가 웃었다.
둘은 마당에 있는 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신영지가 작은 상에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주전자로 따르는 술이 노란빛이었다.
“여기도 막걸리가 있습니까?”
“팔기도 하는데 이 술은 내가 담근 겁니다. 혼자 사니 시간이 많습니다.”
서리하는 사양하지 않고 주는 대로 마셨다. 마치 고향을 마시는 듯했다. 신영지도 건네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술잔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형제처럼 지내기로 했다.
“형님, 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사죄해도 모자랄 한국인을 미워합니까?”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싫기 때문이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동생은 그런 적 없나? 잘못을 한 사람에게 더 모질게 대하는 심리. 상대가 성장하고 있으면 두려움도 느끼지.”
“개인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나라 전체가 그러니까요.”
“흔히 일본을 두고 ‘자본주의의 탈을 쓴 사회주의’라고 하네. 선거를 치루지만 정치가는 거의 세습되고 정권이 바뀐 적이 없는 나라야. 어쨌든 일본인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많으니 사람까지 미워하지는 말게.”
일본에서 박해받으며 사는 사람답지 않게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웠다.
“내가 쓴 시가 있는데 한 번 볼 텐가?” 술이 오른 신영지가 넌지시 물었다.
“시도 쓰십니까? 보여주십시오.”
서리하는 시를 쓰는 사람을 좋아했다. 자신이 시를 써서가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
“내가 취했나 보네. 대시인에게 끄적거린 낙서를 시랍시고 보여주겠다고 하니. 동생, 못 썼다고 구박해서는 안 되네.”
거울 속에
자개문양 고색이 아름다운 화장대
거울 속에 웃고 있다
머리 빗는 모습이 청순해
한참을 숨죽여 봐도 알지 못하고
웃는 네 뒤로
꽃잎 넣은 화선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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