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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시소설 13화

고문실

- 1983년 8월

by allwriting

차가 멈췄다. 눈을 가린 채 서리하는 차에서 내려갔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쇠로 된 좁은 계단을 수갑을 잡아끌고 올라갔다. 나선형 계단이 끝이 없는 듯 길었다. 돌고 돌면서 공간 감각이 사라졌다. 문 여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철문 여는 소리, 철문 닫히는 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듯한데 눈가리개를 풀지 않고 입은 옷을 벗겼다. 알몸을 차가운 쇠판 위에 눕히더니 몸통을 가죽끈으로 묶었다. 수돗물 소리, 아니 그보다 센소리, 거센 물소리가 들리더니 콧구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개를 비틀자 머리를 잡았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 문소리가 들리며 물줄기가 그쳤다.


“전무님, 오셨습니까?”

“그냥 물만은 심심하지. 고춧가루 물로 폐를 터트려 버려.”

강제로 입을 벌리고 고춧가루를 뿌리더니 호스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기도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서리하는 몸부림쳤다. 물고문 뒤에 전기고문이 이어졌다. 발가락에 전원을 연결하고 전기가 잘 통하도록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 물을 뿌렸다. 전기가 흐르자 핏줄이 타들어 가면서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 정도로 되겠어. 더 세게 해.”

몸이 붕 뜨며 발가락에서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고통이 너무 심해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이 자식, 기절했는데요.”

“시작도 안 했는데 엄살은. 깨워.”

다시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몸이 버틸 수 있는 극단에 이르면 고문 방식을 바꿨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르고 눈가리개가 풀렸다. 온통 붉은 칠을 한 방이었다. 고문할 때 쓰는 욕조와 세면대, 문 옆에 철제 책상이 박혀 있었다.

“여자랑 있다 잡혀왔다며. 고만한 걸로 그게 돼?”

불도그처럼 양 볼이 늘어진 남자가 추위와 공포로 위축된 서리하의 생식기를 철사로 찌르며 말했다.

“이걸 넣어서 빳빳하게 세워줄까?”

“그만하면 됐어.”

머리카락이 온통 하얀 남자가 만류하며 마른 수건으로 서리하의 몸을 닦아줬다. 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에서 사악한 기운이 풍겨났다.

“여기는 내게 맡기고 잠시 밥 먹고 와.”

불도그가 나가자 흰머리가 서리하를 철제 의자에 앉혔다.

“동생 같으니 충고 하나 할게. 여기서 죽을 수도 있어. 설령 살아나도 남은 인생을 병신으로 살게 될 거야. 살고 싶으면 빨리 죄를 인정해. 병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관련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불어.”

미리 작성해 놓은 서류와 인주를 내밀었다. 지문을 찍지 않고 버티자 밥 먹으러 간다던 불도그가 들어왔고 다시 고문이 계속됐다. 밤이 되자 고문을 그쳤지만 강한 불빛을 비춰 잠을 못 자게 했다.


다음날은 물고문과 불고문을 동시에 했다. 물을 부으며 발가락으로 전기를 흘려보냈다. 약하게 시작해 점차 전압을 올렸다. 이들은 말 그대로 고문 기술자였다. 어떻게 해야 공포심과 고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날도 서리하는 지장을 찍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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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영업교육센터장/ IGM 강사, 마케팅본부장/ 13권의 책 출간/회사 문서, 자서전 등 글쓰기 강의/ 세일즈, 마케팅, 협상 강의(문의: hohot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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