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나는 알바 면접 일정이 잡혀서 상당히 들떠 있었다. 늘 집에만 있어서 동생과 부모님과만 대화를 해서인지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의 면접이라 긴장했었다. 꾸준히 하던 간헐적 단식도 지키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컨디션 유지를 하려고 노력했다.
면접 당일, 나는 시간보다 약간 일찍 면접 장소에 갔고 면접 담당자가 나를 본 후, 잠깐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는 나에게 커피를 준 후에 면접을 시작했다. 간단한 인적사항과 경력 등을 물으며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분의 말이 잘 안 들렸다. 목소리의 명료도가 떨어졌다. 나는 대충 눈치로 대화 내용을 유추해가며 면접을 마쳤다. 마지막에 면접 담당자께 인사를 한 후, 터덜터덜 면접 장소를 나왔다. 면접을 망친 느낌을 넘어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청력이 나빠진 걸까?
나는 곧바로 근처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직 난청이 오기에는 힘들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나는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럼, 남이 말할 때, 이 웅얼웅얼거리는 듯이 들리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의사 선생님은 가벼운 진찰을 하셨다. 눈에 보이는 이상 요소는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일단 청력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의기소침한 태도로 진료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이후, 빠르게 청력검사를 진행했다.
무소음실에 헤드폰을 끼고, 소리가 나면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나는 꽤 여러 번 눌렀다. 이것이 어떻게 청력을 검사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실히 검사를 받았다. 다음으로 귀에 스피커를 넣어서 검사를 했다. 아마, 주파수를 쏘아서 청신경을 검사하는 듯했다. 나는 이 검사 또한 잘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맞으셨다. 나는 눈치를 못 챈 채, 진료 의자에 가 앉았다.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하셨다. -10dB에서 20dB 사이가 정상수치인데, 한 주파수에서 60dB라는 수치가 나왔다. 나는 얼떨떨했다. 그냥, "약 먹고 잘 쉬세요."정도의 진단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청력에 이상이 있다니, 눈물도 안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내가 닥친 상황이 정말 드라마 같다고 느꼈다. 현실 같지가 않아서였다.
나는 이때까지도 씩씩하게 굴었다. 잠깐 차례를 기다렸다가 진료비를 수납을 했다. 그 와중에, 병원 코디네이터 분들이 두분이 앉아 계셨는데 어떤 분이 나를 불렀는지 몰라서 다른분 근처에 갔다. 나를 부른 분이 내 이름을 다시 부르셨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이 만 원짜리 소견서 한 장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차마 걸어갈 자신이 없어, 교통카드 충전을 해,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오만하게도 갈 일이 없을 것 같이 여겼던,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을 갔다. 정문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문항에 체크하고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남기고 나서야 큰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접수처에서 당일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얘기하셨다. 이비인후과 교수님을 뵈려면 수요일 오전 일찍 뵐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예약증을 받고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가서 동생과 엄마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어폰을 쓰지 말게 할 걸이라는 엄마의 후회와 어렸을 때도, 네가 중이염을 앓아서 귀가 안 좋았다는 엄마의 말에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래도 위로가 되었던 것은 동생이 한 말이었다.
언니가 귀가 안 좋아져도, 언니는 내 언니야.
나는 이후 난청과 이명에 대한 블로그, 카페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어렸을 때도 이명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근데,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낫기는 하는 걸까?" 등등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나는 이에 관련된 생각을 그만 두기로 했다. 어차피 의학적 판단은 블로그가 아니라 의사의 영역이다. 그리고 나으려고 병원 가지, 나빠지려고 병원 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수요일까지 이 파도를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수요일 오전, 나는 소견서를 들고 큰 병원에 갔다. 일찍 와서 그런지 진료도 예약시간인 10시보다 일찍 보게 되었다. 큰 병원이라서 그런지 일하시는 분들도 많고 공간도 넓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청력이 떨어져서 왔다고 하고 소견서를 보여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 저으시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셨다. 아마, 20대 극초반에 난청으로 소견서 들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의아하셨나 보다. 그리고, 예견된 수순을 밟듯 청력 검사를 또 했다.
나는 청력 검사 후,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다시 그 진료 의자에 앉은 후, 처분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기다렸다. 찰나의 시간이라도 엄청 길게 느껴졌다. 나는 어떤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병 앞에 한 없이 작아졌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청력에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네???
이상이 없다고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피곤하면, 젊은 나이에 청력이 나빠지거나 이명이 생길 수 있다."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고 병이 아니다. 단지 잘 자고, 잘 쉬면 된다고 하셨다.(네? 저 백순데요?-겁나 잘 쉼.) 그러면, 잠 좀 제 때 자라고 하셨다.(웃음)그리고 이어폰 장기적으로 쓰지 말라고도 하셨다.
나는 병원을 나오면서 수납을 했다. 진료비와 검사비 합해서 총, 오 만원 되시겠다. 나는 얼떨떨해하며 대형 병원을 나왔다. 나오는 데만도 한참 걸렸다. 나오자마자 동생과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갔다.
이것 때문에 온 신경이 귀로 가 있었던 일주일이었다. 다이어트고 단식이고 뭐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다이어트 대신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자는 것과 아프면 빠르게 병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몸에 안 소중한 기관이 어딨겠느냐만은, 시각, 청각은 감각 기관이어서 너무도 소중하다. 소리가 없는 세상, 건청인인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이다. 이번 기회에 갑자기 찾아온 다행으로, 귀의 건강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폰도 쓰지 않고 잠도 잘 자려고 노력한다.(웃음)
여러분,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 가세요.
20대 초반에 난청인 줄 알고 병원 뛰어간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물론, 귀가 안 좋긴 했었습니다만) 몸이 하는 소리를 잘 듣고, 조금만 아파도 병원 가서 진찰받아보세요. 블로그, 카페가 정보와 위안을 얻기에는 좋지만, 의사 선생님, 전문가의 소견이 없는 이상,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어요. 병원 문 두드리는 거, 누구보다 힘든 거 잘 알아요.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병원 가는 습관, 아프다고 말하는 습관 들이지 않으면, 병을 키우게 됩니다. 꼭 필요한 습관인 거 같아요.
저는 병으로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청력, 시력, 치아 등등 잘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