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7. 나의 소중한

by 로지

# 삼단분리


치매 앓이 중인 나의 앨리스에게 나는 가족 일원 중 가장 코드가 잘 맞는 막내딸이다.

앨리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아빠의 존재까지 간혹 잊거나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는 현재까지 잊지 않은

유일한 가족이라니 엄마의 사랑이란 위대하기만 하다.

그러나 앨리스에게는 어릴 때의 나, 결혼해서 아직 한참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나, 그 딸이 성장해서 입시를 앞두고 있는 현재의 나 이렇게 삼단으로 분리해서 기억하고 상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억이 끊기고,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엮여있는 앨리스의 일상에 세 조각으로 나뉜 당신의 막내딸과의 대화는 때때로 즐겁기도 하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워낙 귀여우신 면모와 재밌는 요소를 갖추신 성품이라서 치매앓이 중인 80대를 보내면서도 변함없는 기질이 사실 매번 반갑다.

그것마저 퇴색해 버린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사라져야 마땅한 치매라는 불치병이 더 싫어질 것만 같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런 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픈 앨리스에게 더 다정한 딸이 되기를

노력하게 된다. 나의 스무 살 앨리스에게도 같은 사랑을 물려주고 매일, 순간, 엄마의 사랑을 느끼도록 전달해 주고 싶다. 앨리스에게 그대로 나의 마음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어쩌면 고스란히 하나도 빠짐없이 알 수 있겠구나 할 때가 많다. 나의 소중한 팔십 대 앨리스가 곁에 있기에 올곧이 전해 줄 수 있다.




# 면역의 신


수험생의 시간은 화살과도 같을 거다.

벌써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11월 수능까지의 기간은 5개월 남았다.

아직도 해야 할 공부가 남아있고 쌓여가지만 체력은 속일 수 없어 지치나 보다.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처럼 전엔 없었던 눈 아래꺼풀의 부풀어 오름, 생리불순과 더불어

지난 12월 치과 정기검진에서도 문제없었던 갑작스러운 사랑니 통증까지 생겨버렸다.

시험이 아무리 급해도 사랑니 치료가 필요해 치과 예약을 서둘러하고 앞선 걱정이 생겨나 버렸다.

발치 여부와 함께 통증과의 긴 시간의 관리를 한껏 예민 해 진 앨리스가 감당할 수 있을지.

치아와 잇몸이 튼튼한 나는 사랑니도 안정적이어서 발치의 경험이 없다. 주변인들에게 사랑니와 관련된 경험을 수집해 보면 고생한 사람보단 가뿐하게 지나간 후기가 더 많다. 다행스럽게 겁 많은 앨리스를 안심시켜 주지만 하필 중요한 시기와 함께 커다란 과제가 생기는 상황에 표정이 심란하다.

면역의 신이 있다면 앨리스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여기저기 이곳저곳 예상치 못 한 고장을 조금 더 미뤄 주시기를.

무던한 마음으로 예민함을 조금 거둬 주시기를.








# 여름아 부탁해


이름아침과 늦은 밤은 봄바람 치고 상당한 바람이 불었지만

하루 이틀 사이로 더 이상 얇은 카디건조차 필요치 않은 본격 여름의 서막이 열렸다.

에어컨 청소 기사님들의 방문이 현실을 알려주는 듯했다.

유독 땀이 많은 체질인 나와 앨리스는 여름은 정말 취약하다.

그래서인가 추운 나라인 아이슬란드나 핀란드엔 관심이 가도 동남아 대표 여행지들엔 영 마음이 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엔 추위를 못 견뎌하는 친구와는 사뭇 어려움이 있었던 기억도 난다.

추운 겨울 난 거리를 더 걸을 수 있었지만 친구는 어딘가로 빨리 들어가 몸을 녹이고 싶어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었던. 어릴 때부터 추워서 고생했던 기억보단 더위에 지쳐 힘들었던 기억이 여러 자락 남아있다.

매번 다가오는 여름의 강도에 대해서 예견함이 많지만 올여름도 강렬한 더위와 빈번한 여름비로 적지 않은 고생을 예감한다. 한 번에 쏟아지는 폭우가 자주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래전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마무리해 도로 주행의 자신감이 생길 때는 시야를 막는 강한 빗줄기로

초보 운전자의 무모한 자신감을 막아주었던 고마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피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한 번에 쏟아지는 빗물이 무섭다. 여름의 달콤한 과일들과 구황작물들을 애정하지만 따라오는 폭우와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도하게 되는 어른이 되어버린지도 오래되었다.

인디고의 '여름아 부탁해'를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두고 운전할 때 즐겨 듣곤 한다.

파도소리와 함께 여름의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명곡이다. 올 해의 여름도 부탁하고 싶다.

여름아 너무 드세게 다가오지 말아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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